비서실장·동생 구속영장 잇단 기각에 '무리한 수사' 지적도
경찰 "시민 법정서 외면" vs 검찰 등 "혐의 소명은 법과 원칙에 근거해야"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지방경찰청의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비리에 대한 수사가 삐걱대고 있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의 부임 이후 토착비리 엄단을 약속하며 호기롭게 시작된 수사는 시장 동생과 비서실장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잇단 구속영장 기각으로 맥이 빠진 모양새다.
이런 결과에 만족할 리 없는 경찰은 "(영장을 기각한 법원과 검찰이) 시민 법 감정을 모르는 결정을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에 집착해 진행된 수사가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 김 시장 주변에 대한 경찰의 수사 상황, 이를 둘러싼 논란과 쟁점 등을 짚어본다.
◇ '토착비리 척결' 울산시장 주변인 3건 동시 수사
경찰의 김 시장 주변에 대한 수사는 지난 3월 수면 위로 부상하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경찰은 시장 동생 A씨가 2014년 한 건설업자와 '아파트 시행권을 확보해 주면 그 대가로 A씨에게 30억원을 준다'는 내용의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뒤, 시장 동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변호사법 위반) 수사를 벌였다. 이 사건에서 김 시장의 형 B씨도 피의자로 입건했다.
경찰은 또 아파트 건설현장의 레미콘 납품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김 시장의 비서실장인 C씨, 레미콘업체 대표 D씨, 울산시 고위공무원 E씨 등 3명을 입건했다.
비서실장 C씨가 2017년 4∼5월 평소 친분이 있던 업자 D씨의 부탁으로 주택건축 업무를 관장하는 E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에 따라 E씨가 한 건설현장 소장을 시청으로 불러 두 차례에 걸쳐 "지역 업체 물량을 써달라"고 입김을 넣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경찰은 '김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2014년 편법으로 후원금을 받았다'는 진정에 따라 김 시장의 친척인 F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입건, 수사하고 있다.
현재 시장 주변에 대한 수사 3건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시장 관련 수사에 자유한국당은 '표적수사'라고 반발했다. 반면에 '성역없는 수사를 지지한다'는 시민의 응원도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시장 동생 A씨 담당 수사관과 고소인의 유착 의혹 등 부적격 논란, 황 청장의 접대골프 논란, 황 청장의 수사지휘 회피 등 잡음과 우여곡절도 끊이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언론을 통해 소개됐고, 그때마다 경찰의 시장 주변 수사가 언급되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 시장 동생·형, 비서실장 영장 잇단 기각…수사 급제동
야심 차게 시작된 수사는 그러나 경찰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경찰은 3월 말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시장 동생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그러나 울산지법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고, 다투어볼 여지가 있다"며 영장은 기각됐다.
경찰은 시장 형 B씨에 대해서도 지난달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각했다.
경찰은 이달 초 레미콘 납품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비서실장 C씨 및 D·E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모두 기각했다.
'혐의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고, 상당한 증거가 확보돼 있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것이 경찰이 밝힌 기각 사유다.
김 시장 주변 관련 3건의 수사 중 2건의 핵심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된 것이다.
피의자 구속 여부가 수사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사건의 중량감을 이해하는 척도는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찰은 황 청장 부임 이후 '토착비리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번 수사에서 핵심 피의자 구속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번번이 영장기각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자 당혹감을 느끼며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래서는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없다"면서 "특히 수사기관인 검찰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부적절하며, 적어도 사법기관인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이 아직 시민의 법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 "영장신청은 법 정서 아닌 법과 절차에 근거해야"
하지만 경찰이 핵심 피의자라고 주장한 시장 주변인에 대한 영장 기각이 되풀이되자 경찰의 수사력에 의구심을 품는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구속영장 신청'이라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과정을 끼워 맞추는 식의 수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우선 최근 경찰이 신청한 김 시장 비서실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검찰부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울산지검은 기각 사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장신청·청구·기각 여부 자체가 수사보안사항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반응의 배경에는 경찰에 대한 불만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울산지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경찰의 영장신청은 여론의 도움을 얻어 청구와 발부를 압박하려 했거나, 아예 신청 자체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미비한 수사결과로 영장을 신청하면서 여론에 의지하려 했거나, 혹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기각을 예상하고도 영장을 신청했다'는 뜻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도 "지금까지 경찰이 언론을 통해 공개한 혐의 내용만으로는 영장 발부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어렵다"면서 "영장 발부를 위해 혐의를 소명하려면 막연한 '시민 법 정서'가 아니라, 범죄사실과 증거 등을 토대로 법과 절차에 근거해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적용한 일부 혐의를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경찰은 비서실장 C씨와 D·E씨 등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히 적용하면서, 레미콘업체 대표 D씨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추가했다.
건설현장 외압이 이뤄진 이후 D씨가 사례의 뜻으로 비서실장과 E씨에게 골프 접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서실장과 E씨에게 뇌물수수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뇌물죄는 필요적 공범(2인 이상의 공동행위가 필요한 범죄)이어서 뇌물공여만 적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죄의 경중을 따지면 오히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밝혔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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