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긴급·비긴급 나눠 생활안전 출동기준 적용 효과
"출동 거부에 욕설 여전"…비긴급 신고는 110 이용해야
(수원=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응급환자가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잠긴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엔 출동이 어렵습니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세요"
지난 3일 오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상황실로 "출근길에 열쇠를 집 안에 놓고 문을 잠갔으니 와서 좀 열어달라"라는 한 회사원의 119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은 상황실 근무자는 응급환자로 인한 긴급상황이 아닌 것을 확인, 신고자에게 출동이 어려움을 밝히고 민간 열쇠 업자를 이용할 것을 안내했다.
잠시 후 이번에는 경기 화성시에서 집 안 변기가 막혀 물이 흘러넘치고 있으니 구급대원들을 보내 뚫어 달라는 황당한 요청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상황실 근무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막힌 변기를 뚫는 건 구급대원들의 업무가 아님을 알리고 '국민콜 110'으로 신고를 인계했다.
소방당국은 불과 두 달 전까지 하루 100여 건씩 쏟아지는 이런 생활안전 신고에 일일이 구급대원들을 보내 민원사항을 처리해왔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119 신고를 위험 정도에 따라 '긴급', '비긴급'으로 나눠 출동 여부를 판단하는 '생활안전 출동기준'을 실시한 결과, 관련 출동횟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생활안전 출동기준을 적용한 3∼4월 두 달간 경기도 내 생활안전분야 신고 출동횟수는 1천45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천246건)에 비해 79.9%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문 개방 출동은 지난해 1천618회에 비해 올해는 59회로 96.3%나 줄었고,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등의 동물구조 요청은 지난해 4천855회에서 올해 1천50회 출동해 78.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긴급전화인 119로 걸려온 단순 민원성 신고를 비긴급 일반민원을 전담으로 처리하는 국민콜 110으로 넘긴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같은 기간 접수된 3천662건의 신고 중 58.6%인 2천148건은 110 등 타 기관으로 이첩됐다.
정부는 2007년 각 기관 신고전화를 통합한 110을 신설하며 비긴급 신고사항은 110을, 재난 긴급사항은 119를 사용하도록 기능을 세분화했다.
119에서 민원출동을 할 경우 정작 촌각을 다투는 긴급신고에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재난상황실 한 근무자는 "원래 비긴급 신고는 110을 이용해야 하지만 지금껏 모든 신고가 119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 긴급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이젠 불필요한 민원출동이 줄어드니 남은 시간 동안 대원들이 훈련과 출동대기에 집중할 수 있어 대응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이다 보니 신고 출동이 어렵다는 설명에도 무리하게 출동을 강요하는 민원인이 많아 애를 먹고 있다고 소방 관계자들은 토로했다.
도 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불편한 상황에 다급한 마음을 갖는 건 이해하지만, 민원인 중 출동을 거절하는 대원들에게 욕설까지 퍼붓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라며 "신고전화의 용도가 나뉘어 있는 만큼 긴급신고는 119를, 비긴급신고는 110을 이용해달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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