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운동·동맹, 막바지 협상…포퓰리즘 정부 탄생 우려에 금융시장 불안 고조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 경제 규모 3위인 이탈리아에 사상 처음 포퓰리즘 정부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총선을 치른 지 9주가 지났으나 정부 출범이 지연, 오는 7월 재총선 실시에 무게가 실리던 이탈리아 정계가 반체제 정당과 극우 정당의 결합이 현실화되는 쪽으로 반전하고 있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31) 대표와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45) 대표가 9일 정오께(현지시간) 꺼진 것으로 간주됐던 양당 간 연정 협상의 불씨를 되살려 얼굴을 맞대면서다.
이런 가운데 그 동안 오성운동과 동맹 사이의 애꿎은 장애물 역할을 해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총리가 이날 저녁 오성운동과 동맹 두 정당끼리 연정을 꾸리는 것을 전격 승인함에 따라 교착에 빠졌던 이탈리아 연정 협상에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디 마이오 대표와 살비니 대표는 이날 로마에서 직접 만나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가능성을 조율했다.
두 사람이 새 정부 구성에 필요한 협상을 위해 24시간을 추가로 달라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요청함에 따라, 당초 이날 중도 내각을 이끌 총리를 발표하려던 대통령실은 총리 지명 계획을 보류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총선 이후 지금까지 각 정당들의 연정 협상이 교착에 빠지며 2개월 넘게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자 지난 7일 각 정파의 수장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모아 마지막 면담을 실시한 뒤, 중립적인 인사에게 총리를 맡겨 중립 내각을 구성해 연말까지 정부를 이끌게 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국내외의 엄중한 상황을 감안할 때 이탈리아는 더 이상 리더십 공백을 감내할 수 없다며 중립 내각을 구성해 내년 예산 처리, 선거법 개정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한 뒤 내년 초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게 국익을 위해 최선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제안에 이번 총선에서 약진하며 주류 세력으로 떠오른 오성운동과 동맹은 즉각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 오는 7월 8일에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나란히 주장했다.
두 정당의 의석을 합하면 상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 의석을 훌쩍 넘는 오성운동과 동맹이 반대표를 던지는 한 마타렐라 대통령의 지명을 받을 총리 후보가 신임투표를 통과할 가능성은 전무해 이탈리아는 결국 오는 7월에 조기총선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오성운동과 동맹이 이날 재투표로 향하는 사실상 마지막 길목에서 협상 테이블 앞에 마주 앉자, 막판 연정 성사 가능성에 정가의 관심이 집중됐다.
여기에 두 정당의 결합을 가로막는 노릇을 해온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며 오성운동과 동맹 사이에서 빠지겠다고 전격 선언함에 따라 오성운동과 동맹의 공동 정부 구성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성운동은 지난 3월 총선에서 빈곤에 신음하는 남부를 싹쓸이 하며 32%를 득표, 창당 9년 만에 단일 정당 가운데 최대 정당으로 약진했고, 동맹은 반(反)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18%의 표를 얻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득표율 14%)를 제치고 우파연합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우파 정당 4곳이 손을 잡고 선거에 임한 우파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37%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바 있다.
지난 5년 간 집권 세력인 중도좌파 민주당은 19%의 표를 얻는 데 그쳐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뒤 오성운동, 동맹 어느 쪽과도 손 잡지 않고 야당으로 남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의석 수를 합치면 상하원 모두 과반을 초과해 두 정당이 구성한 연립정부가 의회 신임투표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성운동과 동맹은 애초부터 서로 연대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으나, 두 정당의 결합에는 그동안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투명한 정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오성운동은 탈세와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 등으로 법정에 밥 먹듯이 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부패의 대명사'로 취급하며, 연정을 위해서는 베를루스코니와 결별할 것을 거듭 압박해왔다.
살비니 동맹 대표는 그러나 공동으로 선거에 임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우파연합을 깰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해 양측의 연대 노력은 현재까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살비니 대표는 그러나 최근 들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게 오성운동과 동맹으로 이뤄진 연정 출범을 위해 자발적으로 한쪽으로 비켜줄 것을 요청하는 등 기류 변화를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재투표를 치를 경우 다시 당선될 것을 장담할 수 없는 FI 의원 상당수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게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출범을 위해 길을 터주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며,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고민도 깊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총선에서 14%를 득표한 FI는 총선 이후 '밴드 왜건 효과'(우세해 보이는 팀이나 사람을 지지하는 현상)에 의해 지지층을 극우 동맹에 급속히 빼앗겨 현재는 지지율이 9%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가뜩이나 교착 상태에 빠진 이탈리아 현재 정치 상황의 책임자로 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재투표를 치를 경우 개인적으로 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오성운동과 동맹 사이에서 빠지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거부권을 행사한 주체는 단연코 우리가 아니지만, 이탈리아는 몇 개월째 정부 구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이번 결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의회에서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에 찬성표를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두 정당의 결합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다만, 동맹과의 지방선거 등에서의 협력과 연대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와 살비니 동맹 대표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라는 장애물이 사라짐에 따라 누구를 총리로 내세울 것인지를 포함해 연정 출범을 위한 본격적 협상을 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최대 정당의 수장인 자신이 당연히 총리 후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디 마이오 대표는 지난 6일에는 살비니 대표가 원할 경우 공동으로 총리 후보를 정할 의향이 있다고 기존 방침에서 한발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에 회의적이고, 전임 민주당 정부가 도입한 연금 개혁안 폐지, 세금 대폭 인하 등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을 공통적으로 약속한 오성운동과 동맹만으로 이뤄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권이 EU 3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이탈리아를 장악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시장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날 1.64% 급락한 밀라노 증시는 이날은 0.5% 올라 다소 반등했으나,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 스프레드(금리차)는 한때 132.7bp까지 치솟아 6주 새 최고를 기록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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