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AI가 대신해주면 '인간의 선택 폭' 좁아지고, 더 많은 개인정보 내 줘야"
(마운틴뷰<미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삶에서 수행할 역할에 대한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앞에 놓인 길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그 권리를 얻은 데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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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8일 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쇼라인 앰피시어터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구글 I/O)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 대량유출 파문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실리콘밸리를 강타하고 있고, 구글 역시 페이스북만큼이나 사생활 보호 및 인터넷 윤리 측면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 세계 18억 명의 이용자를 가진 유튜브가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고,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지난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지적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에 성적 학대 내용이 들어가는 등 문제가 된 동영상의 홍수를 시의적절하게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 여러 사례도 제기됐다.
계정이 없는 사람들의 웹 활동까지 추적해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그림자 프로필(Shadow Profile)'의 경우 구글이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도 있었다.
'타깃 광고'를 목적으로 한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 관행은 구글이 페이스북 못지않다는 것이다.
피차이 CEO가 기조연실에서 '책임'과 '성찰'을 언급한 것은 이런 역풍과 비난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피차이 CEO는 물론, 키노트 연설자로 나온 구글 임원들은 구글의 AI 기술 진화를 쏟아냈다.
구글 홈, 또는 스마트폰에 탑재된 AI 비서 플랫폼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미장원을 예약하고 피자를 주문하는 모습이 시연됐고, G메일에서 단어 몇 개를 쓰면 자동으로 문장을 매끄럽게 완성해주는 '스마트 작문' 기능도 소개됐다. 스마트 작문은 이메일을 더 빨리, 더 완전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구글은 설명했다.
구글 어시스턴트의 목소리를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기능이 올해 말에 나오면 미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인 존 레전드의 목소리로 날씨 예보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 기반의 새로운 뉴스 앱도 선보였다. 머신러닝을 통해 이용자가 평소 관심이 있는 이슈나 사는 지역의 뉴스를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의 콘텐츠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구글은 AI의 컴퓨팅 파워를 훨씬 강력하게 만들 자체 프로세싱 칩도 공개했다. 구글의 자체 칩은 지난해 처음 발표됐지만, 올해 신제품은 지난해보다 8배나 속도가 빨랐다.
2016년 I/O때의 화두였던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는 해가 갈수록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이날 발표된 구글의 새로운 기능이나 업데이트는 사실상 모두 AI와 관련된 것이었다.
구글 AI의 진화는 행사에 참석한 7천500여 명의 개발자와 기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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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하게 하라(Make Google Do It)'는 슬로건 그대로 소소하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상의 많은 일을 AI가 대신해주는 '디지털 웰빙'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구글의 메시지는 매우 간명하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겨라. 그러면 당신은 더 행복해지고, 더 생산적이 될 것이고,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당신의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이득을 위해 우리가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은 없는 것일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구글이라는 기업이 공짜로 이런 편의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스케줄 관리, 이메일을 쓸 때 문장 구성의 고민, 이 시간 이후엔 어떤 앱을 쓸 것인지에 대한 생각, 심지어 언제 엄마에게 전화할지 등의 소소한 선택이 내가 아닌 AI의 몫으로 조금씩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선택의 폭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구글은 "AI가 당신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저장하고 행동 패턴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IT 전문매체 버즈피드는 "구글이 하게 하라는 명령은 사용자의 명령이 아니라 구글의 명령"이라고 꼬집었다.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보안이 사회문제화하면서 기술의 폐해와 부작용, IT 대기업의 탐욕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 고조되는 작금의 현실, 쏟아져 나오는 진화한 AI 기능들, 구글 CEO의 '책임감' 언급이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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