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역 화폐인 고향 사랑 상품권 바람이 거셉니다. 고향 사랑 상품권 역사는 꽤 됩니다. 1999년 상품권 발행에 정부 승인이 필요 없게 되면서 태백, 예산, 고령 등 3개 지자체가 선도적으로 도입하면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과 문제로 인해 주목을 받는데 19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골목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고향 사랑 상품권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고향 사랑 상품권 목적과 효과에 주목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10여 곳이 상품권을 신규 발행했거나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연합뉴스는 일석다조 효과를 내는 고향 사랑 상품권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3편에 걸쳐 살펴봅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0…강원도 양구에서는 이게 돈이죠. 부조금 내고 차에 기름까지 넣고 있어요.
저는 양구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일규(56)라고 합니다.
신용카드나 현금 대신 손님이 건넨 상품권이 뭐냐고요?
'양구 사랑 상품권'이라고 하는 건데 음식점을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내미는 것보다 상품권을 주는 게 훨씬 좋습니다.
수수료가 없으니까요. 요즘 카드 수수료가 얼마나 센지 모르겠어요.
차곡차곡 모인 상품권은 농협에 가서 바로 돈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현금처럼 사용하기도 해요.
양구에서는 이것으로 안 되는 게 없죠.
장도 보고, 밥도 사 먹고, 차에 기름까지 넣을 수 있어요.
늘 현금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실 때도, 장사 준비를 위해 시장에 갈 때도 사용합니다.
2년 전 고등학교 후배 녀석 첫째 아들 결혼식에서 축의금으로 썼고요.
솔직히 장례식장에서 고스톱 칠 때도 몇 번 쓰긴 했습니다. 허허.
작년에 뉴스에서 보니 양구 도박판에서 압수한 물품 중에 상품권이 있었어요. 그만큼 양구 사랑 상품권을 돈이랑 똑같이 쓴다는 것 아니겠어요?
친구에게 돈 몇만원 빌렸다면 상품권으로 갚아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랍니다.
11년 전 상품권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담당 공무원이 찾아와 가맹점이 돼달라고 권유하자 '과연 이게 잘 될까' 긴가민가하기도 했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받기를 꺼리는 곳들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가맹점이 아닌 곳도 상품권을 받을 정도로 인식이 좋아요.
이젠 주위에서 식당, 가게를 차리면 먼저 하는 일이 가맹점 등록일 정도입니다.
매해 정월 대보름에는 체육관에서 경품행사를 큼지막하게 엽니다.
상품권 3만원 살 때마다 경품권을 한 장씩 주는데, 추첨을 기다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농산물부터 전기밥솥, 청소기, TV, 세탁기, 냉장고까지 푸짐한 상품이 기다리는데 가장 마지막에 골드바와 자동차 추첨을 할 때면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기다릴 정도예요.
인구 2만4천 명인 작은 동네에 살면서 군민들이 지역경제에 보태줄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다들 우리 동네 경제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상품권을 사용하고 있죠.
열심히 쓰면서 차곡차곡 모인 포인트를 다시 상품권으로 받을 수 있으니 일석다조네요.
0…공무원이라면 당연히 고향 사랑 상품권을 써야죠.
저는 전남 곡성군 이덕진(57) 투자유치팀장입니다.
제가 지역 화폐인 '곡성 심청 상품권'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첫 발행 때부터죠.
곡성군청 공무원들은 하룻밤을 꼬박 새우는 당직근무를 서면 당직비를 지역 화폐의 하나인 '곡성 심청 상품권'으로 받아요.
부하 직원들과 곡성군청 앞 식당에서 뜨끈한 국밥 한 사발에 피로와 배고픔을 잠재우고 당직비로 받은 5만원 상품권으로 '한턱'내면 그때만큼은 최고 팀장이 되죠.
'지역을 살리는 상품권'이라며 공직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써야 한다는 말에 부족한 월급을 쪼개 5만원씩 샀다가 현재는 22만원까지 액수를 늘려 매달 구매해 사용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주유소와 마트에서 주로 사용하곤 했죠.
군 공무원들은 해마다 5%, 10%씩 심청 상품권을 더 사자는 자체 캠페인을 벌였고, 그만큼 가맹점 수도 늘어갔어요.
군청과 공무원노조는 각종 포상금이나, 체육대회 경품 등을 상품권으로 지급했고요.
공무원들은 해마다 100만원 남짓 지급되는 복지 포인트 중 10만원씩을 상품권으로 받아 곡성군 내부에서 썼어요.
그러자 상품권을 받는 가맹점 수는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발생 초기 70∼80곳에 불과하던 가맹점 수는 18년째인 올해 400여 곳으로 훌쩍 늘었답니다.
이제는 동네 식당은 물론 오일장에서도 상품권을 쓸 수 있어요.
퇴근할 때면 장에 들러 주전부리며, 저녁거리 등을 상품권으로 사 퇴근하는 게 작은 즐거움일 정도죠.
작지만 큰 보람이 남는 이득도 있어요.
상품권을 구매하면 정가보다 1% 싸게 구매할 수 있는데, 여기에 꼬박꼬박 현금영수증까지 받으면 유리지갑인 공무원으로서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죠.
올해부터는 곡성군 최대 관광지인 기차 마을 입장료가 2천원 인상된 대신 인상된 2천원을 관광객들에게 상품권으로 되돌려줘 곡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유도하자는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행돼 상품권 발생액이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요.
우리 공직자들은 발행 18년간 상품권 제도를 안착시켰다는 큰 보람을 느껴요.
녹봉을 받는 공무원으로서 지역에 되갚을 길이 거의 없는데, 심청 상품권은 월급을 지역에서 써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줘요.
아쉬운 점도 있어요.
재질이 종이이다 보니 지폐보다 크고 두꺼워 다량을 가지고 다니기에 불편해요.
개선하는 데에는 또 군 예산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당장은 감수하지만, 이 점이 개선된다면 외지인도 손쉽게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상품권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신규 공직자들도 점차 저처럼 나이 든 공무원을 보며 상품권 사용이 우리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밤샘 당직비로 후배들에게 국밥 한 그릇 사는 선배 공직자이죠. 고향 사랑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양지웅 박철홍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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