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당시 군이 추진한 대북확성기 사업이 '총체적 비리'로 얼룩진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이 비리에 연루된 현직 군 대령과 국회의원 보좌관, 브로커, 업체 관계자 등 20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특히 브로커를 동원해 166억 원 규모의 대북확성기 사업을 낙찰받은 음향기기 제조업체 대표 조모 씨, 이 업체에 편의를 봐준 권모 전 국군심리전단장(대령), 브로커 2명 등 4명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알선 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대북확성기 사업은 2015년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 사건을 계기로 당시 정부가 2004년 이후 11년간 중단됐던 최전방 지역 대북방송을 심리전 강화 차원에서 재개하며 시작됐다.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는 2016년 말 40대의 고성능 확성기(고정형 24대·기동형 16대)를 공급했으나, 이후 성능이 부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입찰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급기야 검찰이 지난 2월 감사원 요청에 따라 수사에 착수해 3개월간 조사를 벌인 결과, 이 업체 제품은 군이 요구한 '가청거리 10km'에 크게 미달하는 불량품으로 드러났다. 군이 도입 과정에서 확성기 가청거리를 주간·야간·새벽 3차례 평가했는데, 이때 이미 성능이 요구 기준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업체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포함된 브로커를 동원해 로비를 벌였고, 군은 권 단장의 지시로 소음이 적은 야간이나 새벽 중 한 차례만 평가를 통과하면 합격하도록 기준을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입찰 1차 평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수입 확성기 부품을 국산으로 속여 144억여 원을 챙긴 불법도 자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업체와 브로커, 군이 한통속으로 유착돼 안보사업에서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다.
무기 도입과 관련한 방위산업에 만연했던 비리가 대북 심리전에 사용된 확성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고성능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심리전은 당시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아래 추진된 일인데도 이런 비리가 자행됐다는 것은 놀랍다. 목함 지뢰 도발 직후 재개된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방송은 최전방 북한군 장병들의 심리를 동요시켰다. 오죽하면 당시 북한이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남북 고위급 접촉에 나와 통사정을 했겠는가. 하지만 이후 확대된 사업의 뒤편에서는 국민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리가 버젓이 저질러진 것이다.
방산 비리는 이적행위에 다름없다. 법원은 국가안보를 좀먹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 자들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검찰은 재판을 통해 위법·부당하게 낭비된 국방예산과 범죄수익이 확인되면 반드시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검찰이 군 지휘부의 부적절한 지휘·감독, 국군재정관리단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국방부에 통보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검찰의 통보를 받는 대로 해당 연루자들과 조직에 대한 정밀 진단을 벌여 이 같은 비리가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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