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직원들이 지난 4일과 12일 잇달아 집회를 열고 촛불을 들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에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하는 행사였다. 참석자들 발언 중에는 "우리가 열심히 일해 만든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든 것은 경영진이다. 전문 경영진이 와서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직원들은 기업가치를 올려놨는데, 총수와 가족들이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재벌 일가의 불법이나 갑질이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자신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재벌총수들 임금이 많은 것은 그런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벌닷컴 조사결과를 보면 한진그룹 조 회장은 작년에 모두 66억 원의 급여를 받았다. 대한항공과 한진칼로부터 각각 27억 원, 한진으로부터 12억 원을 수령했다. 조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받은 총액은 한 달에 5억5천만 원이며 하루 기준으로는 1천800만 원이다. 다른 재벌총수들도 많이 받기는 마찬가지다. 작년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152억 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 109억 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80억 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63억 원이었다. 상당수 재벌총수는 계열사들 곳곳에 이름을 올려놓고 수십억 원씩 급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벌총수가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재벌총수가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자기 스스로 임금을 결정하는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상법은 주주총회가 전체 이사들의 보수총액 한도를 결의하면 이사회가 임원들 개개인의 임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재벌사 이사회는 총수가 좌지우지하는 곳이어서 총수가 제시하는 급여 액수에 대해 이사들이 반대의견을 내놓기는 어렵다. 총수가 기업가치에 나쁜 영향을 주거나 성과가 부진해도 고액의 급여를 타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재벌사들은 총수들이 왜 이렇게 많은 임금을 받는지 주주들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는 조 회장의 일반급여에 대해 '직위, 직무, 리더십, 전문성, 회사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월 보수를 결정하고, 역량 및 성과 평가결과에 따라 업적금을 매년 1회 지급한다'고만 돼 있다. 한진칼의 사업보고서에도 조 회장의 급여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놨다. 주주들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당국은 이번 기회에 재벌총수 임금을 정하는 방식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당국이 민간기업의 급여 수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임금 산정 절차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총수가 자신의 급여를 정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 임금 내용을 주주에게 가능하면 상세하게 공개토록 하는 것도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임원 보수 정책은 무엇인지, 경영목표 달성 여부는 임금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에 대해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벌총수도 자신의 임금이 적절한 수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CEO)와 일반근로자의 급여가 20배 이상 차이가 나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다고 했다. 직원들이 굴욕감을 느낀 나머지 일할 맛이 안 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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