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정빙기로 닦인 올림픽 빙판…"강원도·검찰 비리의혹 외면"

입력 2018-05-15 08:03  

비리 정빙기로 닦인 올림픽 빙판…"강원도·검찰 비리의혹 외면"
자칫 묻힐 뻔한 반칙 입찰…검찰의 재기수사 끝에 사실로 드러나
의혹 → 고발 → 무혐의 → 항고 → 재기수사 → 기소 → 유죄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반칙 입찰'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정빙기 납품 사업을 따낸 사업자의 항소 포기로 징역형이 확정된 가운데 반칙업체를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하게 할 기회를 강원도와 검찰이 번번이 놓쳤다는 지적이다.
이는 곧 페어플레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올림픽 무대의 빙판을 비리 업체의 정빙기로 닦게 해 얼룩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평창올림픽의 오점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발주처인 강원도의 철저한 검증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있었다면 비리 정빙기가 올림픽 빙판을 닦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평창올림픽을 2년여 앞둔 2016년 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는 평창올림픽 빙상 경기장에 사용되는 정빙기 납품 사업자 선정을 위해 '관급자재(정빙기) 구매 및 임대 사업'을 공고했다.
특수장비인 정빙기 11대를 구매·임대해 올림픽 경기장에 납품하는 사업이다.
당시 입찰에는 정빙기 관련 국내 주요 업체들이 참여했다.
이 중 R 업체는 1순위 지위를 얻었지만, 적격(계약이행능력) 심사에서 탈락했다.
다음 기회는 2순위였던 I 업체에 주어졌다. 그러나 적격심사 통과에 필요한 납품 실적이 부족했다.
I 업체 대표 A씨는 그해 3월 정빙기 2대를 페이퍼 컴퍼니인 S 업체에 1억7천600만원에 판매한 것처럼 매매계약서, 거래명세서, 세금계산서 등의 납품 실적 서류를 허위로 부풀려 강원도에 제출했다.
결국, I 업체는 허위 서류를 꾸미는 반칙 입찰을 통해 15억원 상당의 사업권을 따냈다.
비리 정빙기의 첫 단추는 여기서부터 잘못 끼워졌다.
1순위였다가 적격심사에서 탈락한 R 업체는 곧바로 이의 제기에 이어 강원도 감사관실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해 5월 납품 실적으로 I 업체가 도에 제출한 해당 정빙기 모델은 국내에 수입된 사실이 없어 실체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허위 실적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강원도의 답변은 이미 I 업체와 계약이 체결된 데다 큰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심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리 정빙기의 두 번째 단추도 잘못 끼워진 채 어물쩍 넘어간 셈이다.

이후 R 업체가 검찰에 낸 고발사건이 무혐의 처분된 것도 다소 석연치 않다.
R 업체는 2016년 5월 I 업체 대표 A씨의 부정 입찰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검찰은 I 업체와 해당 정빙기를 거래한 S 업체를 상대로 실제 물품을 거래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I 업체가 적격심사 때 제출한 서류가 일부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당시 I 업체 대표 A씨는 "제출 서류에 기재된 정빙기 모델이 잘못 기재돼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며 "S 업체와의 물품 거래 실적이 아니더라도 다른 납품 실적을 도에 제출했다면 적격심사 통과에 큰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 주장 등을 토대로 그해 12월 I 업체 대표 A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이로써 세 번째 단추 때도 바로 잡지 못한 비리 정빙기는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의 깨끗한 빙판을 얼룩지게 했다.
이대로 진실이 묻히는 듯했던 정빙기 비리 사건은 검찰 무혐의 처분에 대한 R 업체의 항고와 이를 검토한 서울고검 춘천지부의 재기수사명령으로 지난해 5월 재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은 재수사에서 I 업체와 정빙기를 거래한 S 업체가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인 점과 정빙기 매매계약서, 거래명세서, 세금계산서 등이 모두 허위로 작성된 사실을 밝혀내고 지난해 12월 I 업체 대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개막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시점에서 비리 정빙기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열린 재판에서 A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 재판부에 반성문까지 제출하는 등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도의 안일한 대처와 부실한 검찰의 1차 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한 정빙기 비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의 재기수사를 통해 돌고 돌아 2년여 만에 사실로 드러났다.
R 업체 관계자는 15일 "제기한 의혹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검찰도 수사를 좀 더 철저히 했더라면 비리 정빙기가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국가적 이벤트라는 점 때문에 비리 의혹이 단순 실수로 뭉개진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부정 입찰 혐의로 기소돼 지난 3일 열린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I 업체 대표 A씨는 항소를 포기,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j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