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갑질' 논란과 밀수ㆍ탈세 논란도 모자라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 불법 고용 의혹까지 나왔다. 놀라운 것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하는 일이 한진 일가뿐 아니라 일부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소개업체나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다른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비교할 때 영어 구사가 가능하고 학력이 높은 경우가 많아 학령기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인기가 있다. 임금도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낮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그 앞에서 집안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도 있다.
이들은 관광비자나 단기방문 비자(C-3 비자)로 들어와 비자 기간이 끝나도 계속 체류하며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F-4 비자)나 결혼이민자(F-6 비자)처럼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로 제한된다. 이들을 제외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개인 집 담장 속에 숨어 불법으로 일하고 있다. 관계 당국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하기가 어렵다. 이미 1990년대부터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서울 강남 등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일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당국은 전혀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등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인권침해를 당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다. 남성 외국인들은 주로 공장 등에서 단체로 일하지만, 여성 외국인들은 혼자서 가정집이나 마사지업소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할 우려가 크다. 소개업체들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보통 하루 12시간 정도로 주 6~7일 일하면서 한 달에 150만-180만 원을 받는다. 폭언 등 '갑질'이나 성희롱ㆍ성추행을 겪을 위험도 있다. 그러나 불법 체류 신분인 데다 일까지 하는 사실이 발각되면 강제추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관계 당국으로서도 이들의 노동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실태 점검을 하기가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아예 합법화해서 가사노동의 길을 터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합법화하려면 외국인 노동자의 규모를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우선 기초적인 실태 파악부터 시도해야 한다. 앞으로 가사ㆍ돌봄 영역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 이들의 노동문제와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직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함께 이들의 인권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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