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실탄 자제해야" ,가디언 "용서못할 행위"
미국 "이스라엘군은 방어할 권리 있다" 옹호…안보리 성명 채택도 막아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비무장 민간인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 국제사회 여론의 도마 위에 다시 올랐다.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는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58명이 숨지고 2천70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2014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격돌한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1천460여명이 사망한 이래 가장 큰 인명피해다.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규정한 유엔 결의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시한 데다가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자국 수도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특히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비무장 시위자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발포에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유혈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채택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AFP통신이 입수한 안보리 성명 초안에는 가자지구의 평화적 시위 참가자들이 끔찍한 희생을 당한 것과 관련해 "분노와 애도를 표한다.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미래 평화를 훼손하는 일방적, 불법적인 조치 등 어떠한 조치도 취하면 안된다"고 성명 초안은 덧붙였다.
초안은 예루살렘의 특성, 지위, 민주적인 체계를 바꾸려는 어떠한 결정이나 행동도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미국의 결정을 지적한 것이라고 AFP는 분석했다.
독일 정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평화로운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가자지구에도 적용돼야 한다"며 "낮은 단계의 방어수단이 실패할 경우에만 실탄이 사용돼야 한다"며 실탄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백악관 라즈 샤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비극적 죽음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며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은 지난 3월 말 가자지구 보안장벽 근처에서 진행된 '땅의 날'(Land Day) 시위에서 이스라엘군 실탄에 팔레스타인 주민 18명이 숨지고 1천400명이 사망했을 때도 안보리 성명 채택을 막았다.
이스라엘측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항변했고, 백악관 중동정책을 주도하는 제이슨 그린블랫 국제협상 특사는 '적대적 행진'의 책임이 하마스에 있다며 이스라엘 편에 섰다.
그러나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 영상에는 이스라엘군이 어린이와 노약자가 포함된 무방비 상태의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했고, 저격수들은 도망치는 시위자들 등 뒤에 총격을 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오피니언(opinion)을 통해 "뚜렷한 위협이 없는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군병력이 발포해 살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마치 '전쟁 범죄'와도 같은 짓을 자행하는 일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마치 교도소 내에서 폭동을 일으킨 재소자들인 것처럼 취급한다고 가디언은 규탄했다.
이러한 행위의 근저에는 이스라엘의 극우파와 현직 고위 관료들이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팔레스타인 민족의 열망들을 파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렸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비무장 민간인 사살을 스스럼없이 감행할 수 있는 것은 무고한 죽음에도 이스라엘에 아무런 정치적 대가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초 분석한 바 있다.
WP는 팔레스타인이 이웃 아랍국가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란 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데 아무런 정치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유로 꼽았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열강은 최근 몇 년간 앞다퉈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해왔다.
아랍권 국민은 이교도에 탄압받는 팔레스타인에 측은지심을 보이지만 이란과의 패권 다툼 등 다른 관심사를 가진 역내 지도자들 사이에서 팔레스타인이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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