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기소의견 송치 후 "골프접대 1회는 자비 결제" 시인
비서실장 "정치적 수사 증명" vs 경찰 "수사 흠집 내려는 의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토착비리 수사를 진행하는 울산지방경찰청이 울산시청 비서실장에게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를 적용하면서 기본적인 범죄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수사 과정 당시에는 혐의사실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수사 오류나 부실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난 14일 울산의 한 레미콘업체 대표 A씨의 청탁을 받아 아파트 건설현장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비서실장 박모(48)씨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박씨에게는 뇌물수수 혐의도 적용됐는데, 이는 A씨로부터 3차례 골프 접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의 발표 직후 박씨는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적 해석은 검찰이 가려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뇌물수수는 저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라 꼭 해명하고 싶다"면서 "골프비용은 제 돈과 카드로 결제했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경찰이 접대골프를 쳤다고 제시한 지난해 6월 24일 A씨 등 총 4명이 골프를 쳤고, 제가 친 비용은 직접 결제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취재진에게 제시한 자신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에는 당일 골프장에서 18만9천원을 결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찰은 사실관계 확인에 문제가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경찰은 A씨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과 진술만으로 박씨에게 혐의를 적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당시 골프장에서 약 33만원을 결제했는데, 경찰은 이를 근거로 박씨가 접대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박씨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면서 B씨의 반론이나 신용카드 결제 내역, 골프장 전산 기록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당시 골프를 친 사람들 비용을 모두 계산했다'고 진술했고, 박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추가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실수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애초 경찰이 박씨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달 초 경찰은 A씨와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 A씨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면서도 박씨에게는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당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뇌물죄는 필요적 공범(2인 이상의 공동행위가 필요한 범죄)이어서 뇌물을 제공한 쪽만 처벌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는 박씨에게 뇌물수수를 추가로 적용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실한 수사를 토대로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경찰의 김기현 울산시장 예비후보 주변에 대한 수사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표적수사'나 '미친개' 등의 발언을 쏟아낸 상황에서 경찰이 수사력에 무능을 드러내며 스스로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씨는 "경찰이 주장하는 나머지 두 차례 골프 접대도 한 번은 현금으로 되돌려 줬고, 한 번은 골프를 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협력단체 관계자와 골프를 치고 현금으로 돌려준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돈을 내고 골프를 친 저는 왜 뇌물수수가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박씨는 "경찰은 자유한국당이 김기현 울산시장 예비후보의 공천을 확정한 3월 16일에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면서 "두 달 동안 수사한 결과가 고작 이런 수준인 것을 보면 경찰이 스스로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수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피의자 박씨의 항변에 대한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 박씨의 주장을 맞받았다.
경찰은 이 자료에서 "박씨는 두 차례 경찰 조사에서 골프를 치지 않았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반면에 A씨는 '박씨와 6·7·11월 세 차례 라운딩했으며, 그중 두 차례는 자신의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박씨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6월 라운딩한 골프장에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내부사정 등으로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은 최소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A씨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진술, 카드 결제 내역, '골프를 친 기억이 없다'는 박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혐의사실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골프장에 대한 압수수색 필요성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수사 오류나 부실수사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박씨는 그동안 충분히 (자신의 혐의를) 해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거짓 진술로 일관하며 자료제출을 하지 않았다"면서 "사건 송치까지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다가 송치 직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수사의 본질을 흐리고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찰의 해명마저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는 사실관계를 증거로 확정한 뒤에 그 사실이 범죄가 되는지를 법률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절차다"면서 "혐의 입증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는 것인데,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피의자를 예단하고 그럴싸한 정황만 모아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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