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추상조각 유럽서 호평…더페이지갤러리서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이걸 깨졌다고 하시면 안 돼요. 살아서 숨 쉬는 것이거든요."
조각 '제네라지오네' 앞에 선 작가 박은선(53)은 '깨져 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곧바로 표현을 바로잡았다. 붉고 검은 정육면체 화강암에서 솟아오른 듯한 구(球) 표면은 갈라진 듯한 흔적이 분명했다.
알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균열은 박은선 작업 특징 중 하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를 채운 작품 약 20점 모두 매끈한 표면에 균열이 나 있었다. 작가는 이를 '숨통'이라고 불렀다.
"제가 유럽 작업실에 갇혀 감옥 같은 생활을 할 때, 매일같이 마스크며 귀마개를 다 벗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돌마다 '숨통'을 만들었죠."
작가가 이탈리아로 떠난 지 올해로 25년이 된다. 그는 세계적인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에서 공부한 뒤, 인근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했다. 피에트라산타는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리, 헨리 무어, 페르난도 보테로 등 고래로 유명 예술가들이 작업 터로 삼은 곳이다.
작가는 두 가지 색 대리석 판을 쌓아올리고, 중간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만든다. 재료 덩어리를 쪼거나 깨는 식으로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반적인 조각과는 달리, 그는 아예 대리석을 망치로 부순 다음에 다시 조립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박은선 작업은 서양 모더니즘 추상조각과는 구분되는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유럽에서 호평받는다. 그의 조각들은 지난 수년간 피에트라산타 베르실리아나, 피사 국제공항, 미켈란젤로 광장 등에 설치돼 오가는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더페이지갤러리에서 16일 개막하는 '숨 쉬는 돌의 시간'은 좀처럼 국내 전시가 뜸했던 박은선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다.
개막을 하루 앞두고 만난 작가는 "아직도 매일 마스크와 귀마개부터 쓰고 작업장에 들어간다"라면서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25년간 활동하면서 낭떠러지에 몰린 듯한 위기도 많았어요. 그런 위기를 넘기면서 이런 작업들을 완성했어요. 지금 여러분이 보는 제 작업은 제 삶이기도 합니다. 유럽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정말 하루도 긴장을 놓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공간과 조각의 상호 관계를 고찰한 신작들이 나왔다. 높이 5m 천장에 매달린 무게 1.2t의 '무한기둥' 3점은 중력을 거스르는 설치가 독특하다. 222개 구를 모아 또 다른 구를 만든 'Sfere'에서는 대리석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리듬이 느껴진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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