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합뉴스) 권훈 기자 = "정확하게만 치려고 해요. 위기에서 벗어나는 리커버리샷을 연마할 기회가 없죠."
한국 골프의 간판 최경주(48)는 종종 선수가 아니라 레슨 코치처럼 보일 때가 있다.
워낙 골프를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대회에 출전해서도 연습 라운드뿐 아니라 경기 때도 후배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가르쳐주려고 애쓴다.
특히 주니어 등 배움에 굶주린 선수들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퍼준다.
작년 SK텔레콤오픈 때는 3라운드를 마치고 2시간 넘게 최경주재단 꿈나무 선수들에게 벙커샷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SK텔레콤오픈을 앞두고 2년째 주니어 대상 필드 레슨에 나선 최경주는 "내가 얻은 걸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보니 그네들은 재능 기부가 생활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경주가 본 한국 주니어 골프 선수들의 문제점은 뭘까.
최경주는 "너무 똑바로만 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물론 똑바로 치는 건 좋다. 하지만 똑바로만 치려니까 힘껏 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타를 못 친다. 미국 주니어 선수들은 마음껏 휘두른다. 자연스럽게 장타자가 된다."
샷 정확성에 집착하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은 이뿐 아니라고 최경주는 설명했다.
"똑바로만 치니까 트러블샷을 해볼 기회가 없다. 나무 밑에서도 쳐보고 비탈에서도 쳐보고 온갖 상황에서 쳐봐야 대처 능력이 생긴다. PGA투어 선수들이 창의적인 샷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트러블샷을 많이 해봐서다."
한국 주니어 선수들이 비거리보다 샷 정확성에 더 집착하는 것은 OB가 많은 골프 코스 특성 탓도 있지만 눈앞의 성적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도 큰 몫을 한다.
선수의 잠재력이나 성장 가능성보다는 대회마다 주어지는 포인트를 얼마나 착실하게 쌓느냐가 선수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지도자나 선수 부모들 역시 잠재성을 끌어내는 것보다는 당장 대회 스코어에 매달린다.
세계 최강을 구가하는 한국 여자 골프에도 최경주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스윙을 예쁘게만 하려고 한다. 스윙이 예쁜 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예쁘기만 한 스윙은 개성을 죽인다. 선수의 잠재력을 정형화된 예쁜 스윙 속에 가두는 격이다."
최경주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전반적인 여건이 달라져야 고쳐질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최경주는 "미국 골프장은 해가 지기까지 18홀을 다 돌 수 없는 시간대, 즉 트와일라이트 티타임에는 주니어들에게 코스를 내준다. 우리나라 골프장도 주니어들이 코스에서 조금 마음 놓고 라운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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