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한 달도 안남은 시점서 주도권 확보시도 관측
북미비핵화 협상판 흔들지 않는 선에서 '수위 조절'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북한이 16일 한미 양국에 동시 견제구를 던지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태세를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날 새벽 0시 30분께 우리정부에 통지문을 보내 10시간도 남지 않은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시켜 버렸다.
예정대로라면 남북이 마주 앉아 '판문점 선언' 이행방안을 논의하고 있었을 시간인 오전 11시 18분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발표해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를 정색하고 비난했다.
담화에는 미국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 없이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하면 북미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북미정상회담이 가시화한 이후 북측에서 '재고려' 언급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방식과 시한 등을 놓고 치열한 물밑 협상이 계속되는 와중에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단계적·동시적 해법'에 대한 입장을 거듭 밝혔는데도 미국에서 '선(先) 핵포기'에 방점을 둔 리비아 방식이 계속 거론되고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언급도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끌려다니는 모습을 연출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6일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비교적 낮은 수위의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입에서 리비아의 핵무기 관련 장비가 폐기된 미국 테네시 주가 북핵 폐기 장소로 공개 거론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자 북한은 고위급회담을 연기시키고 대미 협상팀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협상 입지 강화를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고위급회담 연기와 김계관 담화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며 "'선 핵폐기'는 안 하겠다며 북한이 회담에 임하는 방식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에 앞서 고위급회담을 일방 연기하는 조처를 하면서 남측에 중재 역할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엿새 뒤인 22일 워싱턴DC로 가서 도널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한층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계관의 담화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중재역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연기 및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가 남북관계와 북미협상의 큰 틀을 흔드는 수준은 아니라는 해석이 대체적이다.
고유환 교수는 "북미 간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심대한 트러블이 있는 거라면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히지 못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걸 북한도 약점으로 잡고 있을 것이고 볼턴 보좌관의 언급 같은 것이 나오지 않도록 정리하라는 신호 같다"고 말했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외무성 성명이나 정부 성명도 아니고 김계관 담화는 급이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면서 "대미협상의 실무책임자 선에서 나온 담화인 것이고 판을 깨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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