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에 마이크 든 5·18 가두방송의 그녀 외침은 "진상규명"

입력 2018-05-17 21:34  

38년만에 마이크 든 5·18 가두방송의 그녀 외침은 "진상규명"
"고문·가혹행위 당한 여성 피해자 진상 규명·가해자 처벌해야"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사실 저는 굉장히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나 다시 광주에 오는 데도 16년이 걸렸습니다."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만행을 시민에게 알리고자 확성기를 들고 가두방송을 했던 '5월의 그녀' 차명숙(58·여) 씨가 38년 만에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차씨는 이날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서 "광주에 오는 것이 어렵고 무서웠지만 38년간 고통받아온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 규명 촉구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호소했다.

1980년 당시 광주교도소에서 당했던 고문과 가혹 행위를 최근 폭로했던 차씨는 국가는 고문당한 피해자를 찾아내고 제대로 기록하며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역할은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맡아 당시 자행된 고문수사와 가혹 행위를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씨는 "당시 교도소에는 나이도 이름도 모르지만 서로 '언니·동생' 하며 불렀던 많은 여성이 있었다. 이들은 아직도 가슴 아파하고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5월 광주의 현장을 지켰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표현했다.
"저 역시 두려웠었다. (여러분)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광주 현장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껏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차씨는 1980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계엄군이 우리의 아들·딸에게 총을 쏘고 있다. 광주를 지키자'는 가두방송을 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26일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몰렸다.
차씨는 군사법정에서 포고령 위반죄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30년이 훌쩍 지난 2011년 재심 청구를 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차씨는 출소 뒤 서울과 경북 안동 등지에서 살다가 광주에는 16년여만에 왔다고 전했다.
차씨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1980년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살이 터져 흰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areu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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