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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군의 잔혹 행위를 피해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이 머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또 다른 비극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본격화한 미얀마군과 반군의 유혈 충돌 와중에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로힝야족 여성들의 집단 출산이 임박한 것이다.
특히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수치심과 주위의 이목 때문에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있어,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AFP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앤드루 길모어 유엔 인권담당 부사무총장은 통신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8∼9월에 광범위한 성폭행이 자행됐던 점을 고려할 때 조만간 (난민 여성의) 출산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힝야 난민 지도자인 압두르 라힘도 "미얀마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출산을 앞둔 여성을 2명 알고 있고 같은 사례가 더 있다고 들었다. 미얀마군은 여성을 성폭행했고 아기들은 범죄의 증거다"고 지적했다.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핍박받는 동족을 위해 싸우겠다며 대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지난해 8월 미얀마 경찰 초소를 급습했다.
미얀마군은 ARS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토벌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70만 명에 육박하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난민들은 미얀마 군인들이 자신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방화와 고문 등을 일삼았으며 여성들에게는 성폭행이라는 악랄한 수단을 동원했다고 증언했고, 유엔과 국제사회는 이를 전형적인 '인종청소'로 규정했다.
유엔은 올해 난민촌에서 4만8천 명의 여성이 출산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난민 여성 수는 파악이 어렵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살아온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도 가족에게조차 피해를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병원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구호단체와 인권단체는 임신 사실을 숨겨온 여성들이 출산후 아이를 몰래 버리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긴급 임신 실태 파악에 나섰다.
로힝야 난민 자원봉사자인 토스미나라는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여성들을 구슬려 병원에 오게 하려고 몇 달을 보냈다"며 "하지만 일부는 임신 사실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유엔 인구기금 소속 의사인 누르자한 미투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웃들의 말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여성도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 성폭행 임신 피해자 중에는 무허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산파인 다니엘라 소피아는 "임신 12주 이내인 경우는 병원을 찾아 낙태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적인 방법을 택했다가 문제가 더 꼬이거나 불완전한 낙태로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6살짜리 소녀가 가족들에게 들킬까 봐 몰래 병원을 찾아와 낙태한 사례도 있다"며 "그 소녀는 미얀마 군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지만,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고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MSF 소속 의사인 마르셀라 크라이는 "트라우마를 갖게 된 여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아이들이 버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MSF가 치료 중인 성폭행 피해 여성은 311명인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아동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비트리즈 오초아는 "유혈사태 발생 9개월이 지나면서 구호단체 활동가들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볼 준비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아이가 행복한 환경에서 자라길 원한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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