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세월호 비극 다시 없어야" 고정형 유리파괴기 개발 김정식 씨

입력 2018-05-18 16:45  

[사람들] "세월호 비극 다시 없어야" 고정형 유리파괴기 개발 김정식 씨
울릉도 모든 버스(200대)에 무상으로 장착…"여전한 안전불감증 안타깝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울릉도는 해안도로가 많고 산악지형이라 혹시라도 버스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이 손쉽게 비상탈출하도록 돕고 싶어 기증을 결정했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개발한 '고정형 유리파괴기'를 울릉도의 모든 버스에 무료로 제공키로 한 재미동포 김정식(63) JSK글래스 대표의 말이다. 고정형 유리파괴기는 선박이나 자동차 등에 장착된 강화유리를 비상시에 도구 없이도 깨고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김 대표는 1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울릉도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와 관광버스 200여 대에 오는 7월 중 유리파괴기를 장착하기로 했다"며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안전한 나라가 되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울릉도 버스회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시연을 했으며, 모두가 찬성해 제작이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장착할 계획이라고 한다.
50년 넘게 유리시공업에 종사해 온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 장치를 개발하게 됐다.
김 대표는 "어린 학생들이 선체에 갇혀 강화유리문을 깨고 탈출 못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고서는 이런 비극을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수개월을 작업실에 처박혀 개발했다"며 "전 세계 200여 개의 관련 특허 중에 유일한 유리창 고정형"이라고 소개했다.
이 장치는 교통수단이나 빌딩 등에서 침수나 화재 발생 시 안전핀 제거 후 레버를 돌리면 유리창이 저절로 파괴되도록 고안됐다. 강화유리는 1㎜ 정도의 흠집만으로도 유리표면이 자잘하게 깨지기 때문에 노약자나 여성도 큰 힘 들이지 않고 10초 안에 탈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는 이 기술로 '2015년 대한민국안전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나 2016년 말에 표창을 반납하겠다고 청와대로 상장을 보냈다. 무료로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해도 정부나 기업 어디도 상용화에 나서지 않았고 그사이 2016년 10월 울산에서 발생한 버스화재 참사를 지켜보면서 자부심이 부끄러움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없으니 상을 거둬달라고 편지와 함께 보냈으나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반송됐다.
김 대표는 "수년째 여기저기에 기술 도입을 요청하는 서류를 보내고 시연을 펼쳐보기도 했는데 장사꾼으로 의심하거나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들었다"며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지만 지나고 보면 말뿐이고 바뀌는 게 없었다. 지난해 제천화재에서 보듯 전혀 나아지는 게 없어 자괴감마저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 없었기에 내 돈을 들여서라도 도울 수 있을 곳을 찾던 그는 지난 3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미주지역 위원들과 평창패럴림픽 참관 후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바로 여기다" 싶은 생각이 들어 기증을 추진했다.
그는 "영화에서 자동차나 선박이 침몰시 안에 갇힌 주인공이 비상망치나 주먹·발을 사용해 유리를 깨고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와 다르다"며 "물속에서는 강한 수압이 바깥에서 유리창을 밀치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깨지지 않는다는 걸 전문가들은 다 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국내 출시 자동차에는 비상망치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며 "버스에 구비된 게 폭행도구로 사용되는 사례가 있어 안 보이게 감추거나 망치를 풀 수 없게 묶어놓은 경우도 종종 봤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모두 안전불감증에 걸려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유리시공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3살 때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동네 유리가게에서 일하면서다. 현장에서 독학으로 기술을 익히며 전문성을 쌓아온 김 대표는 인천국제공항, 종로타워, 아셈타워, 무역센터, 부산 롯데호텔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굴지의 대형 건물의 유리 시공에 참여했다.
하청업체의 한계에 좌절했던 그는 2000년 사업을 접고 미국 댈러스로 이민해 회사를 차렸고 지금은 연 매출 150만 달러 규모의 유리시공회사로 키웠다.
김 대표는 "고정형 유리파괴기 기술로 국내서 돈을 벌 생각은 조금도 없다. 여기저기 해외 기업들로부터 문의가 오지만 대한민국에서 상용화가 우선이라 미루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데 힘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강조했다.


wakar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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