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 보내지말자"…美총기규제론, 폭발직전 '임계점'

입력 2018-05-20 16:16   수정 2018-05-20 17:55

"아이들 학교 보내지말자"…美총기규제론, 폭발직전 '임계점'

전직 교육부장관, 등교거부와 같은 '공격적 접근' 필요 주장
"한계에 봉착"…부실한 규제로 참극 되풀이되자 절망·분노 줄이어
'총격 언제·어디서 발생하나' 문제로 국면전환…심리학자 '참극 체념' 우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또다시 교육현장에서 총기참사 사건이 불거지자 미국 사회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부실한 규제로 참극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연방 정치권과 주(洲) 정부의 '철옹성' 같은 총기 옹호정책이 좀처럼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사회 저변에서 절망과 분노,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 덩컨은 트위터를 통해 등교거부까지 거론했다.
한 전직 교육부 관리가 "선출된 관리들이 총기규제 법률을 가결할 때까지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트윗하자 "우리 가족은 동참한다"며 지지를 보낸 것이다.
덩컨 전 장관은 WP 인터뷰에서 도발하려고 내놓은 아이디어이지만 총기규제를 강화하려면 등교거부와 같은 공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극단적 제안이 거론된 것은 전날 텍사스 주 산타페에 있는 산타페 고교에서 학생이 총기난사로 10명을 살해한 뒤에 나왔다.
되풀이되는 총기참사에 근본적 처방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저항이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에서는 불과 석 달 전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 고교에서 총기난사로 17명이 숨졌다. 그 뒤에 학생들이 생존권 캠페인에 나서면서 부실한 총기규제에 대한 전국적 비판이 거세지기도 했으나 실질적 변화는 뒤따르지 않았다.
일선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관리의 입에서까지 학교 총기난사 사태를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텍사스 주 휴스턴 근처에서 경찰서장으로 활동하는 아트 아케베도는 페이스북 성명을 통해 "슬픔, 고통, 분노의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아케베도는 "일부가 총기를 소지할 권리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는 점을 안다"며 "그러나 나는 이제 더는 용인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고 총기난사 이슈와 관련해 당신네 견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적었다.
그는 "총기가 문제가 아니고 (총기난사와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주장을 게시하지도 말라"고 덧붙였다.
아케베도가 활동하는 텍사스 지역은 미국 내에서도 총기소지에 대한 옹호론이 가장 강력한 곳이다.
총기소지를 헌법적 권리로 주장하며 총기확산을 부추기는 이익단체 전미총기협회(NRA)의 올해 총회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리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총회에 참석해 궁지에 몰린 수정헌법 2조를 수호하겠다며 학원 총기난사를 막기 위해 훈련된 교사들이 총기를 소지하도록 하는 제안을 관철하겠다고 선언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정헌법 2조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를 위해 규율을 갖춘 민병대가 필요한 까닭에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이 조항이 제정될 때 미국에는 연방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이 독재자가 되면 맞서 싸울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주 정부에 있었다.
미국 내에는 그런 취지가 개인의 신체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확장되면서 총기소지가 헌법적 기본권처럼 정착했다는 해석과 논쟁이 있다.
이번 참사가 발생한 텍사스 주의 주지사인 그레그 에벗(공화당)은 총기확산을 막기보다 잠재적 범인의 정신질환 문제를 해결하고 교직원들을 무장하는 방안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베케도 경찰서장은 WP 인터뷰에서 "우리는 국가로서 실패했고, 정책입안자로서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모종의 체념과 비슷한 공포가 감지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총기난사가 벌어진 산타페 고교의 학생 수십명은 3개월 전 파크랜드 고교 생존자들의 시위에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지난달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에 다녀온 카일 해리스는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며 도망치라고 하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타페 고교의 다른 학생인 페이지 커리는 "놀라지는 않고 무서웠을 뿐"이라며 "총기난사가 아무 데서나 일어나고 결국 여기서도 발생할 것으로 항상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WP는 학교 총기난사의 문제가 이제는 '발생하느냐, 않느냐'를 넘어 '언제, 어디서 발생할 것인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파크랜드 참사에서 생존한 학생인 칼 노벨은 "조국과 우리 정부에 대한 희망을 변함없이 잃어가는 상황에서 확신을 갖고 재발방지 운동을 하는 게 어렵다"며 "'다시는 안된다'고 똑같은 구호를 수도 없이 외쳤지만 총기참사는 계속, 또, 계속 터지고 있다"고 절규했다.
되풀이되는 총기참사 때문에 미국 사회의 문화와 인식구조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어린이의 정신적 외상을 연구하는 매리엄 키아-키팅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는 총기난사 소식 때문에 3∼4세 유아들이 비상사태 훈련을 한다는 점을 걱정스럽게 주목했다.
이런 훈련 때문에 폭력이 언제 어디서나 들이닥칠 수 있다는 인식의 세계가 미국인들의 머리 안에서 열린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키아-키팅 교수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신념이 박살 나고 있다"며 "어떤 면에서 우리는 무덤덤해지며 그냥 살아가는데 이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고 몹시 나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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