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투자한 사극 잇따라 방영 보류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지도부의 권력투쟁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수백억원을 투자한 사극을 중국에서 방영 못 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고 홍콩 빈과일보가 23일 보도했다.
빈과일보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방송돼 큰 인기를 끌었던 중국 사극 '궁심계'(宮心計)의 후속작인 '심궁계'(深宮計)가 홍콩 방송국 TVB와 중국 최대 IT 그룹 텐센트(騰迅·텅쉰)의 합작 투자로 제작됐다.
중국 당(唐) 왕조 시대의 궁중 권력투쟁과 귀족들의 음모 등을 다룬 이 드라마는 전날 홍콩에서의 방송과 함께 중국 온라인에서도 방영될 예정이었다.
중국에서는 포털 사이트 등에서 드라마를 방영하는 일이 흔하며, 인기 온라인 드라마의 경우 수억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런데 전날 텐센트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방영을 연기할 수 밖에 없으며, 시청자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첫 방영 당일의 이 같은 소식에 드라마를 보기 위해 온라인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던 많은 중국 누리꾼들은 분노를 나타냈다.
더구나 드라마 방영이 보류된 이유가 다름 아닌 중국 당국에 '괘씸죄'로 걸렸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홍콩 TVB 관계자는 보류 이유를 묻는 말에 "중국 당국의 드라마 심사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국 검열 당국인 광전총국이 배포한 심사 기준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배포되는 온라인 콘텐츠는 사회의 화합을 촉진하고, 우수한 민족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중국 지도부의 권력투쟁을 연상케 하는 궁중 암투를 다루고 있어 방영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여겨졌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분위기이다.
시사 평론가 류루이샤오(劉銳紹)는 "지난해 10월 당 대회에서 광전총국이 당 중앙선전부로 통합된 후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검열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1억 위안(약 170억원)이 투자된 심궁계는 물론 텐센트 등이 무려 5억 위안(약 850억원)을 투자한 '여일전'(如懿傳) 등 여러 편의 궁중 암투극 방영이 보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루이샤오는 "위에서 '성지'(聖旨·황제의 명령)를 내리면 아래에서는 받들 수밖에 없다"며 "이는 봉건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사상 통제이며, 문화대혁명의 연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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