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첫 재판에 나와 "다스는 형님 회사"라면서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차분하게 밝혔다. 그는 다스와 관련된 혐의뿐 아니라 삼성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에도 "충격이자 모욕"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다음은 이 전 대통령의 입장문 전문.
[전문]
나는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조사와 진술을 거부하고 기소 후에는 재판도 거부하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맹세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검찰이 기소한 부분에 대해서 재판부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재판에 임하면서 수사기록을 검토한 변호인들은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많으니 검찰의 증거를 부동의하고 증인들을 재판에 출석시켜 진의를 다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증인 대부분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저와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이 많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상당 부분을 사실과 다르게 말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것은 혹여 본인이나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정을 함께 이끌어온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건 저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입니다. 고심 끝에 증거를 다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변호인은 재판에 불리할 수 있다고 강력히 만류했지만 저의 억울함을 객관적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재판부가 저의 이런 결정과는 무관하게 검찰의 무리한 증거의 신빙성을 검토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다스 소유입니다. 1985년 제 형님과 처남이 회사 만들어서 현대자동차 부품업체에 참여했습니다. 저로서는 친척이 관계 회사를 차렸다는 게 비난의 염려가 있어서 만류했지만, 당시 정세영 회장이 자동차 부품의 국산화 차원에서 하는 건데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고 형님이 하는 것이니 괜찮다며 정주영 회장도 양해했다고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간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소유나 경영을 둘러싼 그 어떤 다툼도 가족들 사이에 없었는데 국가가 개입하는 게 온당한가 의문을 갖습니다. 공소사실에 대해 변호인이 변론에서 모든 걸 설명할 것이므로 저는 줄이겠습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저 역시 전쟁의 아픔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릴 때 일용 노동자로 일하던 제 소원은 한 달 일 하고 월급 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종업원 20여 명인 중소기업에 들어가 전 세계를 누비면서 대한민국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해 거리에서 행상하던 시절에 어머니는 저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이다음에 네가 잘되면 너처럼 어려운 아이를 도와야 한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대답했지만 수백 번 반복되면서 그 말은 제 마음속 깊이 박혔습니다.
어머니 세상 떠나시던 날, 저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울시장 시절 월급의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고등학교 때 학업을 중단한 학생을 위해 '하이서울 장학금'을 만든 것도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00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저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장학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지금은 그렇게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새벽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이 많지는 않았으나 자식에게 바른 정신을 물려주는 데 일생을 다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정신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품은 일이 있습니다. 권력이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세무조사로 보복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경련을 찾아가 대기업 회장을 만나서 '이제 정경유착이란 단어 없애야 한다. 새로운 관계 돼야 한다. 일자리 많이 만들어 내는 것만 최선을 다해달라'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마음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취임 후엔 세계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인과 회의를 수없이 했어도 개별 기업 사업으로 단독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청와대 출입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청계천 복원할 때, 4대강 사업에도 수많은 기업이 참여했습니다. 퇴임 후에 몇 차례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오랫동안 수차례 검찰 수사가 이뤄졌지만, 불법적인 자금이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정한 돈을 받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실무선에서의 가능성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제2롯데월드도 그렇게 시끄러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청계 재단도 순수하게 저의 재산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면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충격이고 모욕입니다. 평창올림픽 유치에 3번째 도전하기로 결정한 후 이건희 회장 사면을 강력하게 요구받고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 위해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을 결정한 것입니다. 2010년 2월 IOC 밴쿠버 총회를 앞두고 2009년 12월 단독 사면해 급히 IOC에 통보하고 자격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평창올림픽을 유치해 지난 2월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로서 세계의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 간 끝없는 분열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어 서로 인정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앞에는 언젠가는 남북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남북 간 진정한 화해 협력,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건 시대적 요구이자 소명입니다. 이런 소명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우리 사회가 먼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게 전제가 돼야 합니다.
바라건대 이번 재판의 절차와 결과가 대한민국 사법의 공정성을 국민과 국제 사회에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해 재임 중의 경험을 전수하거나 봉사, 헌신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법정에 피고인으로서 서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사실에 관해서는 제가 아는 바를 모두 변호인에게 말했고, 재판 과정에서 필요한 사안을 주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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