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伊포퓰리즘 정권까지 '설상가상'…EU 원심력 커지나

입력 2018-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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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 伊포퓰리즘 정권까지 '설상가상'…EU 원심력 커지나
오성운동·동맹 손잡은 서유럽 첫 포퓰리즘 연정, EU에 반기 예고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분열의 위기에 처했던 유럽연합(EU)이 또 한번 큰 타격을 받게 됐다. EU 창설 멤버인 이탈리아에 서유럽 최초로 포퓰리즘 정권이 출범하게 됐기 때문이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은 23일 EU 주변국과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의 연합 정부 구성을 승인했다.
지금은 입장을 변경하긴 했지만 집권 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해 온 오성운동과 반(反)난민, 반EU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동맹이 손을 잡은 연정이 들어서는, EU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EU는 재정 지출 대폭 확대, 난민 통제 강화 등의 국정운영안을 발표한 오성운동-동맹 연정 구성이 가시화되자 연일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마타렐라 대통령이 포퓰리즘 저지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주길 희망해 왔다.
하지만, 두 당의 합계 의석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절반을 훌쩍 넘는 현실에서 민의를 거스르면서까지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출범을 막을 뚜렷한 명분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결국 무정부 상태 지속으로 인한 더 이상의 정국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내키지는 않지만 총리 지명자인 주세페 콘테 피렌체대학 법학 교수에게 정부 구성권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1957년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된 '로마 조약'이 체결된 나라이자, 61년 전 서독, 프랑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과 함께 EU의 첫발부터 함께 내딛은 이탈리아에 EU에 적대적인 시각을 지닌 정권이 들어선 것은 여러 모로 EU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오성운동-동맹 연정은 지난 주 후반 공개한 공동 국정운영안에 복지 확대와 세금 삭감 등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불가피할 공약을 담은데다, EU와의 주요 협정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혀 이미 EU와의 충돌을 예고했다.
또한, 두 정당은 대(對)러시아 제재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50만 명에 이르는 불법난민 추방과 다른 유럽 국가에 즉각적인 난민 분산을 촉구하는 등 EU의 핵심 정책 상당수에 반기를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애초 양당의 연정 구성 합의안 초안에 들어있던 유로존에 대한 선택적 탈퇴 체계 마련, 2천500억 유로의 이탈리아 부채 탕감 등의 극단적 조항이 빠진 것에 한편으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EU는 이들의 방만한 예산 운용 계획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에 1인당 최대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 소득 수준에 따라 15% 또는 20%의 단일 세율 채택, 2011년 도입된 연금 개혁안을 폐지함으로써 연금 수령 연령을 다시 하향하는 방안 등 새 정권의 주요 공약이 현실화될 경우 이탈리아는 연간 약 1천억 유로(약 127조원)의 나랏돈을 추가로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까닭에, 이런 공약이 실제로 실행되면 이탈리아가 재정 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간 뒤 8년 동안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체제 아래 있는 그리스 꼴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지 '일 솔레 24오레'는 새로 들어설 포퓰리즘 정권이 약속한 국정운영안을 시행할 경우 이탈리아의 연간 재정 적자는 EU가 정한 상한선 3%의 약 2배에 해당하는 5.8%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 지난 22일 이탈리아가 그리스에 이어 역내 2번째인 국내총생산(GDP)의 약 132%의 부채를 지고 있음을 일깨우며 "이탈리아 새 정부는 책임있는 예산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15년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반발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유로존 탈퇴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EU로서는 이탈리아가 만약 채무 위기에 직면,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경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로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규모가 그리스의 약 10배, 국가 부채의 총계는 약 7배에 달하는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빠진다면 이는 EU 전체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난민 정책 등에서 EU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난민 억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까지 EU와 각을 세운다면 EU의 원심력은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이탈리아에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것은 브렉시트의 충격을 능가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파운드를 쓰는 영국은 유로존의 일원이 아니어서 영국의 이탈이 EU 전체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은데다, 탈퇴를 위해 오히려 EU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규모 3위이자, 지금까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장서서 EU의 통합 정신을 구현해온 이탈리아의 배신은 EU를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지적했다.
한편, EU의 분열 위기가 가속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월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은 광범위하게 퍼진 반난민 정서가 향배를 가른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EU는 난민의 분산 수용을 거부하는 회원국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나홀로' 부담을 지도록 이탈리아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이래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이탈리아에 입국한 난민은 약 70만 명으로 추산된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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