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운동 소속 피코 의장 "가슴에 손얹은 뒤 국가 배신하는 것보다 낫다" 항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의 하원의장이 공식 행사의 국가 연주 도중에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을 빚고 있다.
로베르토 피코(43) 하원의장은 23일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에서 열린 조반니 팔코네 검사의 추모식에서 국가가 흘러나올 때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모습이 영상과 사진으로 찍혔다.
![](https://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8/05/24/AKR20180524197600109_01_i.jpg)
그의 이런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거나, 거수 경례를 하고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비판을 받고 있다고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현지 언론은 24일 전했다.
피코 의장은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으로 지난 3월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 직후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중도 좌파 민주당 소속의 비토 바투오네 상원의원은 "정부 서열 3위의 인물이 이 같은 진지한 기념식에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당황스러운 무관심을 드러내다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팔코네 검사는 1986∼1987년 진행된 일명 '맥시 재판'을 통해 시칠리아 마피아 300여 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며 마피아와의 전쟁을 주도한 반(反)마피아 영웅이다. 그는 1992년 5월 23일 마피아 두목의 지시로 이뤄진 차량 폭탄 테러로 아내, 경호원 3명과 함께 팔레르모 인근에서 암살됐다.
역시 민주당 진영의 모니카 치린나 상원의원도 "이번 일로 오성운동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며 "그들은 이탈리아인들과 국가기관,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존경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지아 멜로니 당수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하원의장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팔코네 검사의 유가족은 피코 의장을 감쌌다. 팔코네 검사의 여동생인 마리아 팔코네는 "누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탈리아 국가를 들을 수 있다"며 "이번 일은 나에겐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오루카 오를란도 팔레르모 시장 역시 "오늘은 논란을 벌이는 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팔레르모가 (팔코네 검사의 암살 이후)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라며 "자리를 함께 해준 피코 의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피코 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 연주 도중 6초가량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건에 관심을 쏟기에는 다른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며 "손을 가슴에 올리고 나중에 국가를 배신하는 것보다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게 낫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애국심을 내세우지만, 뒤전에서는 부패 사건에 연루된 기성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이탈리아의 현실을 꼬집는 말로 풀이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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