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공장이 재가동 된다면…. 돌아가고도 싶겠지만, 한편으로는 정규직과 차별받기 싫어 안 갈지도 모릅니다."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사내 협력업체 생산직(비정규직)으로 품질검사를 맡았던 이모(46)씨는 두 달째 군산항 물류관리 회사에서 일한다.
급여나 근무여건은 군산공장 근무 때와 비슷하지만, 이곳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이 없어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씨는 지난 2월 13일 군산공장 폐쇄 발표 후 회사로부터 사실상 해고 통지나 다름없는 '근로계약 해지' 메시지를 받았다.
정규직과의 차별 속에서 11년간 묵묵히 일했는데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통보를 받은 그는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와 함께 군산공장에서 일한 사내 협력업체 3곳의 직원은 2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100여 명이 비슷한 시기에 해고통보를 받았고, 나머지도 늦어도 이달 말 계약이 끝난다.
이씨는 "비정규직 퇴직자 가운데 종일 취업자는 30% 미만이고, 시간제 일자리(아르바이트)를 포함해도 구직자는 절반을 넘지 않는다"며 미취업자들은 일자리가 없어 직업 교육훈련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생산직으로 20년 근무했다가 지난 3월 희망퇴직이 확정된 정규직 박모(44)씨는 요즘 집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하릴없이 놀다 보니 가족 생계 걱정에 박씨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여기에 정규직 출신 희망퇴직자가 다른 직장에 취업하면 월 18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 더욱 그렇다.
일부 동료는 취업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 남몰래 일하지만, 대부분은 아예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다.
이미 해고된 비정규직은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박씨와 같은 정규직 희망퇴직자는 이마저도 할 수 없기에 한숨만 나온다.
사무직으로 20년 넘게 일하다가 1차 때 희망퇴직을 신청한 송모(48)씨도 역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놀고 있다.
송씨는 "생산직은 기술이 있지만, 사무직은 특화분야가 없어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며 "나이도 적지 않은 편이어서 앞날이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은 5월 31일 공장이 폐쇄되면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한다.
공장폐쇄 발표 전 2천여 명이던 근로자 가운데 정규직은 3월에 1천200명, 4월에 30명 정도가 각각 희망퇴직을 신청해 이달 말 퇴사해야 한다.
희망퇴직자는 퇴직금, 근무 기간에 따른 통상임금의 2~3년 위로금, 2년 치 학자금, 자동차 구매비 등을 받는다.
두 차례 모두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군산공장 잔류근로자 612명 가운데 200여 명은 최근 전환배치가 결정됐다.
부평공장 16명, 창원공장 58명, 보령공장 10명, 생산부문 외 26명, 노사부문 90명 등에 각각 배치될 예정이다.
전환배치를 받지 못한 잔류자 400여 명은 일단 무급휴직을 적용하고, 다른 공장에서 정년퇴직 등으로 생기는 결원만큼 순차적으로 배치된다.
이들에게는 정부와 노사가 생계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200명에 이르는 사내 비정규직은 폐쇄 발표 후 대부분 계약종료를 통보받아 이미 공장을 떠났다.
이들은 위로금이나 밀린 성과급 지급 등은 없이 100만원이 조금 넘는 실업급여 신청 자격만 가질 뿐이다.
해고 근로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 지자체, 언론 등을 접촉하며 비정규직 현실을 알리고 긴급 대책을 촉구했지만, 여전히 원하는 답은 얻지 못했다.
장현철 비대위원장은 지난 3월 11∼13일 미국 디트로이트 GM 본사와 백악관을 찾아 '공장 정상가동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정규직으로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이 밖에 군산공장 폐쇄로 인한 부품·협력업체 경영 악화로 근로자 1만2천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장기적으로 실직 또는 이직할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수개월부터 길게는 20여 년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함께 땀 흘린 근로자들이 다른 직장에서 제각각의 삶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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