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지휘콩쿠르 석권 샤오치아 뤼 "난 느린 사람"

입력 2018-05-30 10:44  

3대 지휘콩쿠르 석권 샤오치아 뤼 "난 느린 사람"
"다른 이들의 생각에 집중하면 실패…침묵 속 자신과의 대화 중요"
30일 예술의전당서 '피가로의 결혼' 지휘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사람들은 제가 세계 3대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한 방에 뭔가를 보여주는 지휘자'일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 정반대 유형입니다. 전 아주 느린 사람입니다.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최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만난 대만 지휘자 샤오치아 뤼(58)는 그의 말대로 '세계 3대 지휘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어에 연상되는 강력한 한 방 내지 화려한 카리스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신 검은 테 안경 속 반짝이는 눈,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 지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3대 콩쿠르 우승 비결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이런 걸 관객에게 보여줘야겠다',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등에 집중하면 콩쿠르서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얼 잘하고 무얼 못하는지 등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음악과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하죠. 모든 사람이 다 내 음악과 나를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대만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그러나 6세 때부터 시작한 피아노 때문에 음악에도 늘 관심과 애정이 깊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한다.
인생 항로를 음악으로 변경한 그는 미국 인디애나 음대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공부한 뒤 콩쿠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1988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콩쿠르, 3년 뒤인 1991년 이탈리아 트렌토의 안토니오 페드로티 지휘콩쿠르, 그로부터 또 3년 뒤인 199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키릴 콘드라신 지휘콩쿠르까지 '도장 깨기'처럼 3대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했다.
클래식계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대만 출신 젊은 지휘자가 이뤄낸 쾌거였다.
그는 "첫 번째 우승 때는 프로가 아닌 학생 같은 느낌이 강했다. 두 번째 우승부터가 프로로 가는 길목에 놓였던 것 같은데 내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세 번째 콩쿠르를 도전했는데, 이때 우승이 내 커리어에 새 전기를 열어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키릴 콘드라신 콩쿠르 우승 직후 전설적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1996)를 대신해 독일 뮌헨 필하모닉 대만 공연을 이끌 기회를 얻게 됐다. 게다가 처음 지휘해보는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프로그램 변경 없이 그대로 지휘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 이후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1995년 베를린 코미셰 오퍼의 제1카펠마이스터(지휘자)로 본격적인 지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독일 라인주 코블렌츠 극장·코블렌츠 라인 필하모니 음악감독, 하노버 오페라 음악감독 등을 지냈다.
2011년 음악전문지 '그라모폰' 선정 1위 오케스트라에 빛나는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까지 지휘했다.
2010년부터는 고국으로 돌아와 대만국가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리더십 핵심 역시 "오케스트라에 대해 잘 파악하고 그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음악은 수학이 아닙니다. '1+1=2'가 아니죠. 단원들 스스로가 연주하고 싶게 만들면 '1+1=100'도 가능한 영역이 음악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1+1=0'도 가능하죠. 단원들은 모두 프로고 그들을 믿어주면 그들은 더 큰 책임감과 헌신을 보여주게 돼 있습니다."
그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한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성악가들로 출연진이 구성됐다.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로 활약 중인 베이스 장세종이 피가로 역을 맡는다. 소프라노 손지혜(수잔나 역), 바리톤 공병우(백작 역), 홍주영(백작부인 역) 등이 출연한다.
이들을 이끄는 그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도 그저 "모차르트가 완벽하게 써놓은 음악들을 각각 제자리에 두는 것"뿐이다. 애써 자신의 뭔가를 증명하는 것 대신 "모차르트가 표현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 다들 너무 정신없고 빠르게 살아가잖아요. 그러나 침묵 속에 자신을 두는 시간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와 대화 시간을 통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제게는 악보 보는 시간이 그러한 시간입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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