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오늘이 마지막 근무한 날이에요. 그동안 썼던 물품도 정리하고…."
자신을 한국GM 군산공장 '초창기 멤버'라고 밝힌 황모(46·여)씨는 밝은 미소로 31일 공장 정문 경비원과 인사했다.
"마지막 근무 날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며 이 경비원에게 휴대전화를 맡기고 적막감이 맴도는 공장 도로에 섰다.
남편 임모(47)씨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린 황씨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군산공장이 처음 가동한 1996년 생산관리직으로 입사한 이후 이날까지 공장과 운명을 함께했다.
군산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는 "여태껏 열과 성을 다해 일했던 직장인데 떠나려니 섭섭하다"며 "오늘 사무실에 남은 소지품을 정리했다"고 말하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공장 분위기와 잔류 직원 근황을 묻자 밝았던 표정은 금세 바뀌었다.
황씨는 "공장에 남은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이곳에서 쌓았던 갖가지 추억이 떠올랐다"며 "이제 또 군산공장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뺨을 타고 흐를 뻔한 눈물을 손으로 닦고서 자리를 뜬 황씨는 이날 직장과 영원한 작별을 했다.
'한국GM' 로고가 적힌 근무복을 두 손에 꼭 쥐고 공장을 나서던 김모(59)씨는 자신보다 '후배들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영업을 준비할 계획이라는 김씨는 "군산공장에서 28년 근무했다. 나는 원 없이 일한 사람이라 괜찮지만 이제 겨우 40대인 후배들은 어쩌나"라면서 "이제 한창 애들 키울 때인데 후배들 표정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적한 공장 왕복 4차선 도로를 통해 정문으로 걸어 나오는 직원들의 어깨는 쳐져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공장 정문에서는 18년 근무 경력의 한 경비원이 공장을 나서는 차량과 일일이 인사했다.
운전석 창문을 내린 공장 직원도 정들었던 이 경비원과 애써 웃으며 악수했다.
경비원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량 트렁크를 열어 살피는 일을 반복했다.
트렁크에 공장에서 가지고 나온 부품 등 반출 금지 물품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검문 절차다.
정문에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운 그는 차량을 보내며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신원을 밝히기 꺼린 이 경비원은 "이 공장에서 나도 십수 년을 일해서 웬만한 직원들은 다 안다"며 "그동안 보아온 세월이 있으니 직원들의 마지막 퇴근길에 밝게 웃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군산공장에는 직원 40명 정도만 남아 공장 정리 작업과 함께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고 있다.
한때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함께 지역경제를 견인했던 군산공장은 사실상 이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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