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수사' 검사·'허위 필적감정' 국과수 관계자는 시효 지나 면책
총 위자료는 증액…강씨 측 "가해자 모두 면책, 오히려 모욕적" 반발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 강기훈씨에 대해 1심에 이어 2심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2심은 국가가 배상할 위자료 금액을 높였지만 허위 필적 감정 결과를 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홍승면 부장판사)는 31일 강씨와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강씨 측에 총 9억2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강씨에게 8억원, 아내에게 1억원, 두 동생에게 각각 500만원, 사망한 강씨의 부모에게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강씨 본인에 대한 위자료가 1심보다 1억원, 강씨 부모에 대한 위자료가 각각 8천만원 증액됐다.
형사보상법에 따라 이미 결정된 형사보상금 액수를 제외하고 부모님 몫의 상속분을 더해 산정한 강씨에 대한 실제 배상액은 약 6억8천만원으로, 1심 5억2천여만원보다 늘어났다.
배상액은 커졌지만, 사건 당시 허위 필적감정을 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모씨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은 뒤집혔다. 쟁점은 강씨가 김씨에게 배상을 청구할 권리의 소멸시효였다.
1심 재판부는 "국과수 감정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진 2015년 재심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어려운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면서 문서분석실장 김씨도 배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강씨 등이 오랫동안 (손해배상 청구)권리를 행사할 수 없던 사정을 두고 김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강씨와 국가 사이에는 피해 회복이 중요한 면이 있으나 강씨와 김씨 개인 사이에는 소멸시효라는 법적 안정성 측면이 중시돼야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배상금을 받을 수 있어 보호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 2명이 필적감정을 조작하는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고, 강압적으로 수사한 부분은 시효 만료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본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강씨 측은 반발했다. 강씨의 소송대리인인 서선영 변호사는 "소멸시효라는 기계적 법리로 가해자를 다 면책시킨 판결"이라며 "1심에서 똑같은 법리로 수사 검사들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기각했는데, 거기에 국과수 관계자들까지 추가해 가해자를 또 옹호하고 강기훈씨에게 다시 상처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서 변호사는 재판부가 가해자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배상액을 증액한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모욕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1991년 5월 친구이자 전민련 소속 김기설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진 뒤 김씨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강씨는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 형을 확정받고 복역했으나 결정적인 증거인 필적 감정서가 위조된 점 등이 인정돼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에 강씨와 가족들은 국가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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