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부활, 옛날처럼 공연으로 검증하는 방법뿐"
"올해 격투기 은퇴전도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KBS 2TV '개그콘서트'의 전성기와 함께한 캐릭터 '왕비호'가 탄생한 지 올해로 10년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꺼운 아이라인에 큰 하트가 그려진 티셔츠, 핫팬츠에 망사 스타킹, 그리고 '모두까기' 독설. 왕비호는 모두에게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은 존재다.
왕비호를 연기한 개그맨 윤형빈(38) 역시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준 정말 고마운 캐릭터"라며 "지금도 종종 그리워서 소극장 공연 때 의상을 챙겨간다"고 웃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윤형빈은 알려진 대로 '에너자이저'였다. 윤소그룹(윤형빈 소극장) 운영과 후배 양성, 새로운 프로젝트 계획, 격투기 대회 준비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오랜만에 왕비호에 대한 추억부터 곱씹어봤다. 그는 왕비호를 최근 유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최적화한 캐릭터라고 했다.
"요새처럼 답답한 일이 많은 시대, 성역 없이 질러주는 게 스탠드업 코미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임을 고려한다면 왕비호만한 캐릭터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왕비호가 나왔다면 수위를 훨씬 높여야 하겠지만, 탄생 당시에는 각종 제약이 더 많았기에 못 나올 뻔했죠. 당시에 들은 말은 '너 이거 하면 방송 못 할 수도 있어'였거든요."
그는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멋진 장르라고 평가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개그맨들이 망가지고, 웃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멋진 것도 중요하지만 망가지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왕비호를 사랑하는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인 윤형빈 소극장에서 왕비호 10주년 기념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왕비호 밴드'로 불리는 '오버액션 밴드'와 함께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내용으로 이르면 8월께 선보이겠습니다."
그는 '개그콘서트' 활동 이후 격투기 무대에 데뷔, 열심히 운동한 바람에 요새는 왕비호 의상이 꽉 낀다는 '웃픈'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 초반 웃음기 가득했던 윤형빈은 친정 '개그콘서트'의 침체를 이야기할 때는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왕비호답게 독설도 아끼지 않았다.
"'개콘'이 부진한 건 공개 코미디가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할 방법도 간단해요. 그런데 그 길을 어렵게 돌아가고 있죠. 정답은 '검증'이에요. 과거 '개콘'은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를 수백 번 검증한 대학로 공연을 토대로 방송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검증을 한 차례도 안 해요. 마빡이, 고음불가, 화상고 같은 캐릭터를 책상에서만 논의했다면 빵 터질 줄 알 수 있었을까요? 신인 개그맨을 뽑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개그 무대를 바닥부터 오래 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잘생기고 예쁘고 끼 좀 있어 보이는 '스타'를 뽑으니 현장이 재미가 없어요."
그는 그러면서도 "'개콘'은 무조건 잘돼야 한다. 만약 '개콘'이 없어진다면 개그맨이라는 카테고리 전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며 "제가 소극장을 운영하며 후배 50명을 양성 중인 것도 '진짜 웃기는 개그맨'의 명맥을 잇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희 때만 해도 제작진, 선후배, 신인 간 고리가 있어서 어딜 가도 개그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5년간 그게 뚝 끊겼죠. 그러다 보니 대학로에 가도 신인끼리만 모여서 공연을 하니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해요. 요새 잘 나가는 양세형, 양세찬도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들이거든요.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은 사람과 거친 사람은 무대에서 보면 확 차이가 나요. 트레이닝 받은 신인이 무대에 올라야 바로 신선한 코너도 할 수 있어요."
그는 이러한 이유로 힘들어도 직접 대학로 거리에 나가 홍보까지 하며 소극장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한 번은 배우 최민식이 거리에 나선 윤형빈을 여러 차례 보고 "너 인정"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윤형빈은 "제가 그게 창피했으면 다시 거리에 못 섰을 텐데 전투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요즘도 계속 나간다. 최민식 선배님이 공연에 한 번 오신다고 했는데 아직은 안 오셨다"고 웃었다.
다른 코미디 그룹 옹알스와 손잡고, 소극장 내에서도 다양한 이벤트를 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윤형빈은 해외 진출도 꿈꾸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는 원리 자체는 세계적으로 비슷하다고 봐요. 아기들이 뭘 알아서 웃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웃듯이요. 보통 '코미디 한류'를 말하면 '말이 안 통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그럼 그 말과 문화를 배우면 되죠. 가요 한류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보아나 동방신기를 보면 완벽하게 현지화를 했잖아요. 코미디도 그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나라 개그맨들만이 가진 기술로 경쟁할 수 있거든요."
윤형빈은 개그우먼 정경미의 남편이기도 하다. 종횡무진 활동하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걱정될 법도 하다.
이에 대해 윤형빈은 "솔직히 얘기하면 이젠 아내가 해탈한 것 같다. '하지 말란다고 네가 안 하겠느냐'는 식이다. 그래도 내심 응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올해 격투기 무대에서 은퇴전을 치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5살 아들이 놀라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맞지 않고 때릴 거니까 괜찮다"고 자신했다.
"왕비호 탄생 10주년인 올해가 제게도, 윤소그룹에도 굉장히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아요. 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그걸 성공해야 해요.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만 들면 무조건 한다는 정신으로, 앞으로도 절박하게 하려고요."
lis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