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하는 판사, 행정처 근무 없앨 듯…행정처, 대법 건물서 '아웃'
물적·인적 차단으로 '재판거래' 봉쇄…법관 승진제 폐지 기조 가속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31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놓은 담화문에는 '재판거래' 파문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법원행정처'를 대수술하는 내용의 개혁 구상이 비교적 명확하게 담겼다.
김 대법원장은 담화문에서 "법원행정처에 상근하는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조속히 시작하겠다"며 "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몸'이나 다름없는 법원과 행정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분리해 행정처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탈(脫)검찰화'처럼 '행정처의 탈 판사화'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행정처의 주요 간부·실무진 수십 개 자리는 모두 일선 법원 판사를 파견받아 채워진다. 이들은 대부분 재판이나 기획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우수 인력이다. 이 때문에 행정처 보직은 판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엘리트 코스'로 꼽힌다.
그러나 행정처 업무의 상당 부분은 국회·정부 상대 대관 업무 등 정무적 성격이 강하다. 수직적, 관료적인 행정처 조직의 성격도 양심에 따른 재판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일선 법원과는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통상 2년의 파견 기간 후 법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수 판사들에게 행정처 보직을 맡기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이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나아가 일선 법원으로 복귀한 판사들이 행정처에서 하던 것처럼 대법원장이나 행정처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판하는 게 아니냐는 뒷말도 법원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특별조사단의 이번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서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이 단순히 막연한 의심에 그치지 않고 일정 부분 사실일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기능 자체도 대폭 축소할 뜻을 시사했다.
다수의 판사들이 참여하는 수평적인 합의제 기구에서 사법행정의 방향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법원행정처는 그 결정을 집행하는 기능만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의 각종 정책적 결정을 주도하는 일은 이제 없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김 대법원장은 판사 서열화를 조장하는 승진 인사도 폐지해 사법부 관료화를 방지하겠다고도 밝혔다.
'법관의 꽃'이라 불리는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은 이미 올해 정기인사부터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김 대법원장의 인사 관련 언급은 행정처 판사들의 부적절한 처신 배경에 승진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질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또 사법행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봉쇄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앞으로 혁신 작업이 단순히 법원행정처에 대한 외과적 수술에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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