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기후협약·이란핵합의·예루살렘 두고 번번이 충돌
트럼프 독단에 지친 EU 또 배신감…"동맹 얼마나 챙기냐의 문제"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삐걱거리던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동맹'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특히 31일(현지시간) 미국이 유럽연합(EU)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부과를 끝내 강행하자 유럽 각국이 강력히 반발하며 보복을 예고하고 나서 대서양동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불협화음은 지난해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유럽 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방위비 추가 분담을 요구해 동맹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홀로 탈퇴를 선언했고 유엔 '이주민 글로벌 협약'에서도 탈퇴한다고 밝히며 번번이 어깃장을 놓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이자 팔레스타인이 장차 독립국의 수도로 여기는 지역을 포함한 예루살렘을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미국 대사관 이전 계획을 발표해 중동 평화협상 노력에 찬물을 끼얹더니 결국 지난달 14일 대사관 이전을 강행했다.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위를 이스라엘이 강경 진압하면서 사망자가 60명에 육박하고 부상자도 2천700명을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유혈 참사로 이어졌다.
유럽은 강력한 규탄을 보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시위대에 실탄을 사용한 이스라엘 공권력을 오히려 두둔했다.
그동안 중동 평화를 위해 힘을 모아온 유럽 우방들은 미국의 독단에 등을 돌리고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해 거듭 비판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여기에 최근 미국이 지구촌 다자협의의 큰 결실로 평가받던 이란 핵합의에서까지 탈퇴를 강행하자 유럽의 핵합의 당사국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은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2015년 7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 등과 함께 이란과 핵합의를 체결하고 이란이 전력생산 목적 외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유엔, 미국, EU가 부과한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 위협에 강하게 반대하던 유럽 각국은 미국이 탈퇴를 강행하고 이란과의 교역을 저지하려 하자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적 절차에 나서면서 양측의 관계는 최근 급랭했다.
여기에 미국이 다시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 부과 조치를 강행하면서 유럽은 오랜 동맹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배신감에 보복 조치를 시사하고 나섰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수입산 철강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 정부는 EU를 비롯한 7개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잠정 유예했으나 결국 1일 0시(미 동부시간)를 기해 관세 부과 조치를 발효하기로 했다.
이날 미국의 관세 강행 방침이 알려지자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미국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미국의 조치에) 비례해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시사했다.
실제로 EU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부과 강행에 대비해 미국산 오렌지 주스, 피넛 버터, 청바지, 오토바이 등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정하고 대상 리스트를 작성해 이미 회원국에 회람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결정은 국제무역규범 위반으로 불법일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실수"라며 "갈등을 조장하고 경제적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등 현 무역 불균형에 대한 최악의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무역은 OK 목장의 결투가 아니다"며 미국의 호전적 태도를 비난했다.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는 불법"이라며 "무역 충돌에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영국과 EU 국가들은 미국의 긴밀한 동맹국들로, 미국의 관세 부과에서 완전하고 영구적인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미국의 결정에 "깊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YNAPHOTO path='PAP20180428053601848_P2.jpg' id='PAP20180428053601848' title='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인가?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는 신호인가?' caption='[AP=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서양동맹에서 파열음이 감지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처럼 악화된 적은 없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마리안 슈나이더-펫싱어 연구원은 미 시사지 애틀랜틱에 "어떤 측면에서 대서양 관계의 마찰과 긴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제기된 우려들과 닮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슈나이더-펫싱어 연구원은 이번 갈등이 예전과 달리 대서양동맹이 유지될지를 좌우하는 본질적인 불화에 가깝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부시 행정부 당시 대서양 관계의 우려는 미국의 권력이 도를 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향후 미국이 국제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동맹국, 특히 유럽 파트너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의 문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6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두고 "친구가 저런 식이라면 도대체 적이라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고 냉소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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