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불법적 이유로 지급된 돈, '타인 재물' 아니어서 횡령 성립 안 해"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취업 알선 대가로 주고받은 금품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해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불법적인 이유로 지급된 재산은 반환을 청구할 수 없으며 임의로 사용한다 해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문성호 판사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A(67)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피해자 B씨는 2011년 11월과 2012년 2월 A씨의 계좌로 3천만 원을 송금했다. 딸의 취업을 알선해달라는 명목의 돈이었다.
앞서 A씨와 C씨는 B씨에게 국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서울시 산하기관에 B씨의 딸을 취업시켜주겠다며 3천만 원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금품을 주고받으며 이들은 만약 취업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돈을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사실 관계확인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은 '공수표'가 됐고 이들은 3천만 원을 B씨에게 돌려줘야 할 상황이 됐다.
A씨는 3천만 원 가운데 2천100만 원을 B씨에게 반환하지 않고 사업자금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대해 법원은 A씨의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민법상 불법적인 이유로 인해 제공된 재산은 '불법원인급여'로 분류된다. 불법원인급여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판례상 이런 재산 지급의 원인이 된 행위가 내용·성격·목적 등에서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반윤리·반도덕적이라는 점이 현저할 경우 불법원인급여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금품 등 재산의 소유권 역시 지급받은 사람에게 귀속되므로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형사적으로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
문 판사는 "B씨가 A씨의 계좌에 송금한 3천만 원은 자녀의 취업청탁을 위해 건넨 돈으로 배임증재 또는 뇌물공여를 염두에 뒀거나 적어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불법의 원인으로 전달된 금품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취업청탁이 무산됐고, 돈을 돌려주기로 한 경우에도 이 돈이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지는 않아 임의로 소비했다고 해도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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