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직원 사칭 1천만원 피해 막아…"피해자가 돈봉투 건넨 순간 직감"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교회 주변을 서성이던 20대 여성이 검은 정장의 남성에게 봉투를 건네려는 순간 전도사 2명이 교회 문을 박차고 나왔다.
뛰쳐나오는 이들을 본 남성은 다급한 마음에 봉투를 낚아채듯 쥐고서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200m도 못 가 뒤쫓아오던 전도사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 남성은 다름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3일 서울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보이스피싱범을 잡는 데 공을 세운 이들은 광진구 부활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김진우(33)·박지환(36)씨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1시께 교회로 들어가다 불안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 주변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로 이 여성을 지켜봤다고 한다.
화면 속 여성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초조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들고 있던 가방 안을 심각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검은 정장의 남성이 이 여성에게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종이에 사인을 한 여성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조심스레 건넸다.
김씨는 당시 상황이 보이스피싱과 관련됐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몇 달 전 경찰이 교회 앞에서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다며 CCTV를 보고 간 적이 있다.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에 CCTV를 유심히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여성이 돈 봉투를 건네는 순간 동료 전도사인 박씨와 함께 교회를 빠져나와 도망치는 남성을 뒤쫓았다. 피해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다급함에 줄행랑을 치던 이 남성은 얼마 못 가 자빠지고 말았다.
두 전도사는 합심해 이 남성을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 당시 여성이 건넨 봉투에는 은행에서 막 인출한 5만원권 200장, 총 1천만원이 들어있었다.
피해 여성은 교회를 뛰쳐나온 전도사들이 "혹시 돈 건네신 건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그때야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 여성은 '국제금융사기 조직을 검거했는데 당신의 통장이 사용돼 가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에 속아 금융감독원 직원을 가장한 문제의 남성을 만나 돈 봉투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도망가는 남자가 혹시나 흉기를 들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새도 없이 앞뒤 안 가리고 뛰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무엇보다 피해자가 돈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며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담임목사의 가르침을 실현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검거된 남성을 구속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김씨와 박씨에게 오는 4일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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