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의 피신…'최보따리 선생' 해월의 발자취

입력 2018-06-04 07:15  

36년간의 피신…'최보따리 선생' 해월의 발자취
천도교 2대 교조 해월 최시형 120주기



(여주=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평생을 산속으로 숨어다니셨는데 죽어서도 이렇게 깊은 산 속에 계시네요."
일부 지역 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아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2일, 경기도 여주 천덕산 중턱 해월 최시형(1827~1898) 묘소에 200여 명이 모였다.
이곳에서 해월의 후손, 이정희 교령을 비롯한 천도교인, '동학기행'에 참석한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참례식이 열렸다.
올해는 천도교 2대 교조 해월 순도(殉道) 120주년. 해월은 1898년 4월 5일 원주 송골에서 관군에 체포돼 같은 해 6월 2일 한성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 '천도교의 어머니' 해월 최시형
참례식에서 천도교 최고지도자 이정희 교령은 "천도교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 해월은 전국 200여 곳에서 풍찬노숙하면서 곳곳에 진리의 씨앗을 심었다"며 "'사람이 곧 하늘'인 길을 가기 위해 낮은 자세로 임했던 해월 신사가 없었다면 천도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의 간디는 알지만, 해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해월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세계에 확산시킬 시기가 왔다"고 덧붙였다.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1827년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해월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다.
제지소 등지에서 일하다가 화전민 생활을 하던 해월은 35세였던 1861년 천도교 1대 교조인 수운 최제우를 찾아가 동학에 입도하고, 2년 뒤인 1863년 2대 교조가 됐다.
관의 탄압을 받던 해월은 체포될 때까지 무려 36년간 첩첩산중으로 숨어다니며 동학을 이끌었다.
시신은 처형 후 광희문 밖에 버려졌다. 동학교도들이 관군의 눈을 피해 송파에 임시로 매장했고, 2년 후 유골을 수습해 경기도 광주를 거쳐 천덕산에 안장했다.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는 "겉보기에는 산속으로 떠돈 중늙은이였지만 해월의 실천적 삶에 감동해 많은 이들이 따랐다"며 "종교를 떠나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평생 가르치고 실천한 민중의 지도자로, 오늘날 같은 갈등과 혼돈의 시대에 그의 가르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허채봉(53) 씨는 "동학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고자 참례식에 왔다. 오는 내내 마음이 쓰렸는데 막상 와보니 묘소 진입로도 너무 부실하고 접근이 어려웠다"며 "동학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재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도교는 해월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순도 120주기를 맞아 다양한 활동을 계획한다.
경주 황오리 해월 생가터 복원을 추진 중이며, 학술대회와 순례 행사도 열 예정이다.


◇ 곳곳에 남은 피신 생활의 흔적
해월의 발자취는 전국 각지에 남았다.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송골마을 버스정류장 옆에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을 기리며'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을 만든 생명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이 1990년 세운 해월 추모비다.
무위당은 천도교인은 아니었지만 해월의 사상을 실천하고 복원한 인물이다.
해월은 추모비 인근에 있던 원진녀 씨 가옥에서 체포됐다.
비석에는 "작은 보따리를 가지신 행장(行裝)으로 방방곡곡을 찾아 민중에게 겨레의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의 대도(大道)를 설(說)하시고 그들과 함께 항상 일하시면서 동고동락하셨기에 민중들이 선생님을 부르던 애칭"이라고 해월의 별칭 '최보따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용우 무위당 만인회 기획위원장은 "장일순 선생은 동학이 전봉준의 혁명투쟁으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해월의 사상을 말씀하셨다"며 "보따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가 중요하다 하셨는데 아마도 진리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강원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돌배마을에도 해월의 흔적이 있다.
이 마을에서 해월은 1871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머물렀다. 동굴에서 13일을 지내다가 박용걸 씨 집에 기거했다.
해월이 몸을 숨긴 동굴은 '호굴'로 불린다. 호랑이가 굴 앞에서 해월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붙은 이름이다.
해월이 피신한 곳답게 산세가 험하다. 고추와 콩 등을 심는 밭은 경사가 심해 농기계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다. 이 마을에 단 한 마리 있는 소가 쟁기질로 모든 밭을 간다.
과거 동학교도들이 관군에 많이 희생돼 이 마을은 '핏골'이라고도 불렸다.
이장 윤경섭(54) 씨는 "해월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을 이곳에서 폈다"며 "36가구 7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동학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doub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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