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로 정신적 성장까지…잃었던 자신감도 회복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천재 소녀' 김효주(23)가 US여자오픈 골프대회 최종일 눈부신 플레이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비록 연장전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김효주는 난도 높은 코스에서 3, 4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를 적어내며 전성기 못지않은 경기력을 뽐냈다.
이번 대회에서 3, 4라운드에서 60대 타수를 친 선수는 김효주 말고는 없었다.
김효주는 그동안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맸다.
2014년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화려하게 세계 무대에 등장한 데 이어 이듬해 JTBC 파운더스컵을 제패해 '차세대 여왕'으로 주목받았던 김효주는 2016년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 우승 이후 가파른 내리막을 탔다.
지난해 상금랭킹 38위까지 추락한 김효주는 올해는 8차례 LPGA투어 대회에서 세차례나 컷 탈락했고 한 번도 20위 이내 입상 없이 주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장기인 곧은 아이언샷은 좌우로 흔들렸고 정교한 퍼트 역시 예리함을 잃었다.
이런 김효주가 재기의 조짐을 보인 것은 사실 US여자오픈에 앞서 치른 볼빅 챔피언십이다.
김효주는 간신히 컷을 통과하고 3라운드에서 74타를 쳐 꼴찌로 떨어졌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몰아쳤다. 이날 김효주보다 더 낮은 스코어를 낸 선수는 65타를 친 2명뿐이었다.
김효주의 부활은 크게 세 가지 변화에서 비롯됐다.
첫째는 몸무게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김효주의 체중은 50㎏ 중반이었다. 한여름에는 50㎏ 초반까지 내려갔다.
전성기로 꼽는 2014년 김효주의 몸무게는 65㎏까지 나갔다. 당시 김효주는 국내 무대에서 넘볼 수 없는 1인자였고 LPGA투어와 일본 무대 원정에서도 펄펄 날았다.
몸무게가 줄면서 샷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결국 스윙이 흐트러지는 원인이 됐다.
김효주의 현재 체중은 62㎏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기 몸무게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작년보다는 눈에 띄게 몸무게가 늘었다. 체중 증가는 자연스럽게 파워 증가와 스윙 안정으로 이어졌다.
물론 늘어난 체중은 근육량 위주다. 김효주는 "몸무게가 늘면서 쪼그라들었던 비거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지난달 2주 동안 스승 한연희 코치와 스윙을 바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한연희 코치는 "4월초에 한국에 온 김효주의 스윙을 점검했더니 드라이버든 아이언이든 백스윙 때 클럽 페이스가 엎어지는 현상이 아주 심했다. 그때는 시간이 별로 없어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4월말에 다시 한국에 와서 2주 동안 한연희 감독의 지도를 받은 김효주는 예전 스윙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US여자오픈 경기를 TV로 지켜본 한연희 코치는 "아직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지만 최악이었을 때보다는 눈에 띄게 나아졌다"면서 "무엇보다 이제는 어떻게 볼을 쳐야 하는지 알고 친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 코치는 "비거리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던 듯하다"면서 "리디아 고, 박인비 등과 비교해봐도 비거리가 뒤지는 게 아니니 특기인 정교한 샷을 되찾으라고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김효주가 긴 부진에서 벗어날 조짐은 정신적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효주는 지난해 10월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마친 뒤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시즌 내내 함께 다녔던 아버지에게 "내년부터는 혼자 투어를 다니겠다"는 뜻을 밝히고 허락을 받았다.
2살 위 언니가 당분간 함께 다니고 있다지만 그림자처럼 돌봐주던 아버지와의 결별을 김효주는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막상 아버지가 안 계시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라던 김효주지만 정신적으로 훌쩍 성장했다. 주변에서는 책임감과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US여자오픈 준우승은 이런 세 가지 변화가 비로소 효과를 내기 시작한 셈이다.
특히 김효주는 잃었던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소득까지 거뒀다.
김효주는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그동안 걱정하신 아버지께서 앞으로 편안하게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자리로 돌아온 스윙과 체중, 그리고 홀로서기로 재기에 나선 김효주의 자신감이 묻어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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