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음악인생 70년, 은빛 선율로 빛나다

입력 2018-06-04 14:54  

정경화 음악인생 70년, 은빛 선율로 빛나다
바이올린 리사이틀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70년 긴 세월도 정경화의 바이올린 소리를 녹슬게 하지 못했다. 콘서트홀을 울린 은빛 찬란한 소리가 청중의 귀를 정화하고 가슴을 울렸다. 그것은 단지 바이올린 소리라기보다는 음악을 향한 사랑이자 기쁨이었다.
지난 3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2시간가량 진행된 이번 리사이틀에서 브람스와 프랑크 등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최대 걸작들로 구성된 주옥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듯 이영희 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등장한 정경화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젊은 시절 그토록 완벽을 추구한 강박도 모두 사라진 듯, 그가 바이올린으로 만들어낸 음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정경화가 연주하는 곡 하나하나에서 작위적인 노력은 발견되지 않았다. 때때로 음이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느끼고 사랑을 전하는 것임을 아는 70세 거장의 바이올린 연주는 이미 소리 차원을 넘어 음악 본질을 향하고 있었다. 음악은 곧 하모니이며 사람 사이의 진실한 소통임을 그의 바이올린이 말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정경화의 바이올린 톤을 특징짓는 그 빛나는 은빛 톤은 여전한 광채를 뿜어냈다. 롯데콘서트홀의 긴 잔향 시간과 음색을 밝게 표현하는 특성 덕분에 정경화 바이올린 톤은 그 어떤 공연에서보다 더 찬란하게 들려왔다. 지난 70년간 오직 현 위의 인생을 살아온 바이올린 여제의 내공. 그것은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바이올린 톤 속에 살아있었다.
다만 콘서트홀의 밝은 음향 조건 때문인지 저음역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첫 곡으로 연주한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에서 베이스라인이 잘 들리지 않아서 이 곡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3번에선 연주자들이 콘서트홀 음향에 적응한 덕분인지 피아노와 바이올린 하모니가 좀 더 잘 살아났다.


이번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은 케빈 케너는 충실한 톤과 이지적인 연주로 정경화의 감성적인 바이올린 연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특히 브람스의 소나타 4악장에서 들려준 웅장한 피아노 연주는 정경화의 열정적인 바이올린 연주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브람스의 소나타 4악장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잠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교향곡 연주를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휴식 후 정경화의 바이올린 독주로 연주된 바흐의 '샤콘느' 연주는 특히 감동적이었다. 연주 중 때때로 음이 빗나갈 때도 있었고 템포가 일정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문제 되지 않았다. 바흐의 '샤콘느'에 담긴 무한한 우주가 '샤콘느'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D음 하나의 울림에서도 전해졌다. 이 곡을 수없이 연주했고 진실로 사랑한 음악가가 아니라면 이토록 영감에 찬 연주는 불가능할 것이다.
리사이틀 마지막을 장식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연주는 기교와 표현 두 가지 점에서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프랑크 소나타 4악장의 고양된 연주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켜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열띤 환호로 이어졌다. 정경화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비롯한 3곡 앙코르 연주로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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