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든 건 종교가 아닌 과학"

입력 2018-06-06 06:02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든 건 종교가 아닌 과학"
신간 '도덕의 궤적'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우리 몸은 체온이 섭씨 36.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땀을 흘려 식힌다. 체온이 내려갈 때 부르르 떠는 건 몸을 덥히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다.
몸은 마치 자동온도조절 장치처럼 기능하는데, 우리의 감정도 동일한 역할을 한다. 몸 상태가 설정값을 벗어나면 불쾌감을 느껴 불균형을 재빨리 바로잡게 하고, 균형 상태를 회복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처럼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바로 감정이다. 최근 심리학과 인지과학은 이 같은 감정이 인간의 도덕적 토대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신간 '도덕의 궤적'(바다출판사 펴냄)은 본능적 감정에 뿌리를 둔 인간의 도덕이 종교가 아닌 과학과 이성의 힘으로 진보해왔다고 설파한다.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저명한 미국 과학작가로 창조론, 사이비 과학, 미신에 맞섰다. 1997년 과학주의 운동을 이끄는 스켑틱소사이어티(Skeptics Society)를 설립하고 과학저널 '스켑틱'을 창간해 지금까지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책은 느끼고 고통받는 감정능력이 있는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을 도덕의 출발점으로 삼고, 도덕적 진보를 이런 감응적 존재의 더 나은 생존과 번성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기본적인 도덕 감정과 추론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원래 인류의 조상 때부터 무리 지어 협력과 경쟁을 하고 동물을 사냥하면서 갖게 된 자질과 능력이지만, 추상적인 추론까지 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이 같은 추상적 추론 능력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서 역지사지할 수 있게 하는 도덕적, 윤리적 추론 능력의 바탕이 된다. 오늘날 확산하는 동물보호 운동은 도덕적 추론의 대상이 인간에서 동물로 확장된 결과다.
책은 인간의 지능이 계발돼 추상적 추론을 잘하게 될수록 도덕적 추론 능력도 따라서 향상되고 그 결과 인간의 도덕적 진보도 가속화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논거를 제시한다.
특히 19세기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을 통해 확립된 과학적 합리주의가 오늘날 인류가 이룩한 도덕성의 밑바탕이 됐다고 강조한다.
반면 종교를 도덕의 원천으로 보는 통념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여러 종교가 수천 년 동안 도덕을 독점하면서 사랑과 용서, 절제와 관용을 이야기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는 수많은 도덕적 실수로 재앙을 초래하고 이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한다. 십자군전쟁, 종교재판, 마녀사냥, 노예제도와 테러, 동성애 혐오 등.
현대의 종교가 발휘하는 사회적 효용성에도 회의적이다. 미국만 봐도 자선 활동에 기여하긴 하지만 살인, 성병, 낙태, 청소년 임신 같은 사회문제에 힘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오늘날까지도 피로 얼룩진 전쟁, 대량 학살, 테러, 범죄 등 악과 부도덕에서 탈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악과 부도덕의 주된 원인을 사실 오류나 오해에 근거한 잘못된 도덕적 판단의 결과로 본다. 따라서 합리적 이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인류가 충분히 계몽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편다.
그는 인류가 멈추지 않는 도덕적 진보를 통해 건설할 미래사회를 '문명 2.0'이 구현된 '프로토피아(protopia)'로 명명한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는 호의적이고 친절하고 착하게 행동하려는 성향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잔인하고 악하게 행동하려는 성향도 있다. 이런 타고난 성향과 무관하게, 사회적 조건과 시스템의 변화 덕에 사회는 전반적으로 더 도덕적인 세계로 향하고 있다."
김명주 옮김. 768쪽. 4만8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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