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함안 가야읍 가야리 발굴조사
건물터·암반 구덩이·5∼6세기 토기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가야·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중심세력을 형성했고 신라·백제·왜와 교류했다는 고대 국가인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나 자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사료 연구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아라가야의 토목기술과 방어체계, 생활문화를 구명할 획기적 고고학 자료가 나온 것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그간 문헌과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지난달 시작한 발굴조사를 통해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울타리) 시설을 찾아냈다고 7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한 토성 유적은 가야 권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축조기법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성 높이는 8.5m이고, 상부 폭은 20∼40m에 이른다. 조사 구역에서 드러난 성 길이는 약 40m다.
흙으로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나무기둥을 설치하고, 차곡차곡 흙을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성벽 상부에는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짐작되는 2열 나무기둥이 조사됐다.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동시기 가야 토성으로는 높이가 약 4m인 합천 성산토성, 양산 순지리토성과 높이 2.8m인 김해 봉황토성이 있다"며 "다른 가야 토성보다는 확실히 크다"고 강조했다.
백제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풍납토성 높이가 13m이고, 몽촌토성 높이가 6m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야리 토성도 왕성급 유적이라는 것이 연구소 설명이다.
토성 안에서는 목책과 함께 건물터·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발견됐다.
강동석 연구관은 "바닥이 지면보다 높은 고상(高床)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건물터는 기둥 구멍 배열이 불규칙적이어서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내에서 확인된 유적 가운데 이목을 끄는 것은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가로 5.2m, 세로 3.4m, 높이 0.5m 구덩이다.
구덩이 내부에는 아궁이 위에 솥을 거는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는데, 무덤을 비롯한 의례 공간에서 출토되는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와 손잡이가 달린 주발, 붉은색 연질토기도 나왔다.
이 구덩이에 대해 연구소는 "가야 문화권에서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라며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된 듯하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라가야가 봉분을 높게 만든 무덤인 고총(高塚)을 조성하고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한 전성기인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에 제작한 토기 조각들이 나왔다.
조사 지역은 1587년 편찬한 조선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고에 아라가야 왕궁 추정지로 기록됐고,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과 같은 지명이 전하는 곳이다.
연구소는 "이번에 나온 토성은 아라가야에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권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그동안 아라가야 유적 발굴은 고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왕성 유적이 나오면서 최고지배층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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