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서만 2천 경기·2천 안타 달성한 난 복 받은 것"
"밤부터 내일 준비…10년 연속 타율 3할은 엄청난 자부심"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이번 달에 못하면 안 돼요. 그러면 또 힘든 달이 되거든요. 날짜상 이번 달 안으로 끝나야 정상적입니다. 이달 안에 못 끝내면 방망이를 못 쳤다거나 아팠다는 얘기니까요."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의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홈 경기를 앞둔 LG 트윈스의 간판 박용택(39)은 이달 안에 '양신' 양준혁(은퇴)을 넘어서겠다고 별렀다.
박용택은 5일 경기에선 1회 무사 1, 3루에서 좌중간 안타로 결승타를 터뜨리는 등 안타 2개를 쳤다.
6일에도 안타 2개를 보탠 박용택은 통산 안타 수는 2천297개로 늘려 이 부문 1위 양준혁(2천318개)에게 21개 차로 다가섰다.
안타 22개를 더 치면 박용택은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새 주인으로 우뚝 선다. 그는 22∼24일 홈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일전에서 신기록 수립을 희망한다.
박용택는 이달 기념비를 벌써 두 개나 세웠다.
2일에는 통산 홈런 200개를 채워 KBO리그 최초로 200홈런-300도루 클럽을 열었다.
3일엔 역대 7번째로 2천 경기 출장과 2천 안타를 모두 달성했다. 2천 경기-2천 안타 클럽 멤버 중 오로지 한 팀에서 위업을 이룬 선수는 박한이(39·삼성 라이온즈)와 박용택뿐이다.
◇ "LG 유니폼만 입고 2천 경기를 뛰었구나…울컥하고 스스로 대견스러워"
박용택은 2천 경기 출장 후 "나 자신이 대견스럽고 약간 짠했다"면서 "2천 안타, 200홈런 때와 달리 LG 유니폼만 입고 2천 경기를 뛰었기에 한 팀에서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휘문고-고려대 출신인 박용택은 야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꿈으로 간직해 온 LG 유니폼을 2002년에 입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그는 데뷔할 때부터 트레이드 불가 선수였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에도 박용택은 팀을 떠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평생 LG 밥을 먹겠다"던 게 그의 소원이었다. 이런 LG에서 타자로서 대기록을 세웠으니 스스로 뿌듯해할 만했다.
박용택은 "LG에서 뛴다는 건 내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이고, 난 복 받은 것"이라고 했다.
데뷔 이래 17년 사이 감독이 8명이 바뀌는 와중에도 박용택은 꾸준히 기량을 유지했다.
박용택은 "우리 선수들끼리 하는 말로 'LG에서 그렇게 버텼다'고 한다"면서 "우리 팀이 이런 것, 저런 것 신경 안 쓰고 야구할 수 있는 팀이 아니지 않나. 많은 팬, 그리고 뜨거운 팬을 보유한 구단이다. '가을 야구'를 못한 10년을 내가 잘 버티고 견뎌서 이룬 기록이라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탈지 효과'는 더는 새롭지 않다. LG만 떠나면 다른 팀에서 기량을 꽃피우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 생긴 용어다.
그 대척점에 LG에서 타자로서 한 획을 그은 박용택이 있다.
"나도 LG를 떠났으면 400홈런을 쳤을까"라면서 호기롭게 웃던 박용택은 "사람마다 사는 방식, 품고 있는 꿈이 다 다르고, 다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건 아니다"면서 "진짜 어릴 때부터 꿈꿔온 건 LG에서 잘 나가는 야구 선수였는데 그런 막연한 꿈을 지금까진 잘 해오고 있는 것 같다"며 현재의 위치에 만족스러워했다.
◇ 밤부터 시작하는 내일 준비…사상 첫 10년 연속 타율 3할을 향해
박용택은 야간 경기를 끝나고 숙소에 돌아온 순간부터 내일 경기를 준비한다.
그는 "경기 후 밥을 먹고 방에서 타격 밸런스를 점검한다. 방망이만 잡고 서 있어도 밸런스가 어떤지 안다"고 했다.
밸런스가 좋으면 스윙 몇 번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안 좋으면 내일 경기 콘셉트부터 연구한다. 예전에는 경기장 지하 연습장에서 1∼2시간 타격 연습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체력적으로) 못 버틴다고 했다.
박용택은 데뷔 초창기부터 데이터에 민감했다. 김성근 전 감독만큼이나 데이터를 중시했다.
요즘도 자기 전에 내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야구장에 나오기 어려워할 정도로 불안해한다.
침대에 누우면 휴대전화로 LG 트윈스 전력 분석 사이트에 접속한다. 다음날 등판할 투수의 영상, 상대 팀 타자, 그 투수와 자신의 과거 대결 영상 등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야구장에 오면 근육 운동, 마사지 치료, 투타 훈련을 하고 경기 전 30분간 토막잠을 잔다. "눈에 피로를 확실히 덜 수 있다"는 게 박용택의 설명이다.
이런 루틴으로 박용택은 2009년부터 작년까지 9년 연속 타율 3할을 쳤다.
올해에도 3할을 넘기면 박용택은 역대 최초로 10년 연속 타율 3할이라는 이정표를 세운다.
박용택은 "열심히 해서 꼭 쳐야죠. 그 기록을 이루면 굉장한 자부심이 들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연속이라는 게 힘든 것"이라면서 "10년이란 시간에 정말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치로의 도전·'소길댁' 이효리의 달관에서 배우는 철학과 우승 반지
5월 타율 0.255에 머문 박용택은 한동안 방황하다가 갑자기 득도했다.
우리 나이 불혹에 이른 현재, '언제까지 야구를 해야 하나'와 같은 장래 문제로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마침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잔 부상도 그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왜 벌어지지도 않은, 그리고 자신이 결정할 수도 없는 문제로 고민하느냐"는 전문 심리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도인이 된 그의 입에서 스즈키 이치로(45)와 지금은 '소길댁'으로 유명한 가수 이효리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치로는 올해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직원으로 물러났지만, 은퇴를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이효리는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뒤로하고 소통하는 자연인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진심이 담긴 이효리의 한마디는 포털사이트에서 이효리 어록으로도 널리 퍼졌다.
박용택은 "내가 야구 선수로서 최고는 아니었지만, 이치로처럼 후보, 대타 등 자리를 가리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또 "누가 들으면 주책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효리 씨가 요즘 방송에서 하는 말의 느낌을 이해할 것 같다. 뭘 그렇게 늘 기를 쓰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욕심과 번민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박용택은 앞으로 안타를 몇 개 더 칠지, 올 시즌 후 세 번째 FA 계약에선 얼마나 받을지 등 자신의 의지만으론 풀 수 없는 문제에 초탈했다고 한다.
다만, "내 야구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려면 꼭 우승해야 한다"며 우승 반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박용택은 신인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이래 16년간 그곳을 다시 가진 못했다.
"예전엔 우리 부모님도 나만큼이나 스트레스받으면서 야구를 보셨는데 요즘은 제가 조금만 스트레스받은 것처럼 보여도 엄마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와요. 야구 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팀의 주장이고, 뭔가를 해야 할 사람인데 표정이 어두우면 팀에도 마이너스죠. 내가 할 일을 기분 좋게 하면서 LG의 건강한 야구로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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