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해체 후 카자흐 등에 자금·기술 지원하고 핵폐기 유도
과학자 전직 알선해 핵기술 유출막아…'북한에도 적용' 주장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세기의 핵담판이 될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열공'한 것으로 알려진 카자흐스탄 방식이 북한의 비핵화 모델로 급부상할지 관심을 모은다.
미국의 강경파들이 선호하던 '리비아 모델'이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사실상 용도폐기된 상황이어서 '카자흐스탄 모델'이 이번 북핵 협상에서 중요한 참고 기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카자흐스탄 모델이란 옛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의 핵무기 폐기를 위해 샘 넌·리처드 누가 전 미국 상원의원이 1991년 공동으로 발의한 '넌-루가 법'을 가리킨다.
당시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소련의 붕괴로 어느 날 갑자기 자국 영토에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갖게 된 비자발적 핵보유국이었다.
'위협감축 협력프로그램'(CTR)으로 알려진 넌-루가 법은 소련 해체 후 이들 국가에 남아있던 핵무기와 화학무기, 운반체계 등을 폐기하기 위해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총 16억 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마련해 해당 국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보유한 수천 기의 핵탄두와 미사일 등 핵전력을 러시아로 넘겨 폐기 처리했다. 옛 소련의 생화학 무기 제거 역시 넌-루가 법의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됐다.
그 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537기, ICBM 격납고 459개, 폭격기 128대, 공대지 핵미사일 708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496기, 핵잠수함 27척, 핵실험 터널 194곳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핵 개발에 동원된 옛 소련 과학자 등의 인력을 대상으로 전직(轉職) 훈련과 직장 알선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가진 핵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유출되는 일을 방지했다.
이 프로그램을 고안한 두 전직 의원은 지난 4월23일 워싱턴포스트(WP) 공동 기고문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북한에 대한 협상 전략과 수단을 짜내는 가운데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초를 되돌아봄으로써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며 자신들의 방식을 북핵 해결에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넌-루가 법의 모델을 북한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북핵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직접 자금과 기술을 지원함으로써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무기 제거를 이뤄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해왔다. 북한의 핵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재훈련, 재취업 문제도 여기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2월에는 루가 전 의원의 보좌관과 저명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이 북한을 방문해 이 모델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했다.
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리비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방식 등 여러 방식도 있는 만큼, 북한의 경우 어떤 것이 제일 현실적인지 학술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우리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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