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뮬로바 & 제네바 카메라타 공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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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한때 '얼음여왕'으로 불린 빅토리아 뮬로바의 바이올린 연주는 언제 어떤 무대에서나 한결같은 신뢰감을 준다. 흔들림 없는 연주 기량, 귀를 정화하는 순수한 음색, 반듯한 운궁(활 다루는 기술)에서 전해지는 음악에 대한 정직함. 지난 8일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도 뮬로바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음악팬을 사로잡았다.
뮬로바가 이번 무대에서 선보인 곡은 바이올린의 감각적인 음색과 서정성을 잘 보여주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그의 연주는 감각적이기보다는 이지적으로 들렸다. 완벽한 비율의 크리스털 조각상처럼 투명한 톤으로 재현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2악장에서 템포가 다소 빨라 선율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기 어려웠음에도,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위태로울 때가 많았음에도, 뮬로바의 순수한 바이올린 톤과 정직한 태도는 그 모든 결점을 덮어버렸다.
긴박감 넘치는 3악장 종결부에서도 마지막 한 음까지 충실하고 순수한 톤으로 마무리 짓는 그의 놀라운 침착성 덕분에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린 문헌사에 길이 남을 최고 걸작품의 위용을 뿜어냈다.
이번 공연에서는 뮬로바의 바이올린 연주 외에 제네바 카메라타의 공연 프로그램과 연주방식도 흥미로웠다. 정통성을 지향하는 뮬로바와는 달리 제네바 카메라타의 연주는 시종일관 고정관념을 뒤엎었다. 모험적이고 획기적인 오케스트라로 통하는 제네바 카메라타는 어떤 연주단체도 모방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연주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연주방식 또한 색달랐다.
제네바 카메라타는 2013년 창단한 젊은 실내악단이지만 그들이 연주하지 못하는 곡은 없는 듯했다. 베토벤 교향곡부터 아이브즈의 '대답 없는 질문'과 조너선 케런의 '조지 거슈윈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19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에서 각기 다른 연주법과 악기로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였다.
베토벤과 멘델스존 작품에선 현대식으로 개량되지 않은 옛 트럼펫과 호른을 사용한 반면, 케런의 현대음악에선 오늘날 사용되는 호른을 편성해 음색과 연주법에 차이를 두었다.
제네바 카메라타는 대체로 빠른 템포에 리듬의 맥박을 강조함으로써 관객을 음악의 역동성에 끌어들이는 연주 전략을 선보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연주방식은 특히 케런의 '조지 거슈윈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비롯한 현대작품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에선 다소 수긍하기 어려웠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데이비드 그릴자메르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지휘하는 동안 3박자로 된 악장이든 2박자로 된 악장이든, 한 마디를 한 박처럼 지휘하며 매우 빠른 템포로 밀어붙였다.
이는 베토벤 음악이 지닌 역동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으나, 베토벤이 적어놓은 음표에 담긴 세심한 뉘앙스와 의미를 음미할 사이도 없이 음악이 빠르게 흘러가는 바람에 연주가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다.
베토벤이 그의 교향곡 8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옛 음악에 대한 풍자나 스릴 넘치는 전조의 긴장감은 어디에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 동안 작곡가가 정성스럽게 적은 음표들이 단지 록밴드의 반복되는 드럼 소리에 묻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릴자메르가 이끄는 제네바 카메라타의 공연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색다른 연주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준 매우 성의 있고 의미 있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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