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에 걸쳐 3천200여만원 기부…기린 "인도주의적 지원"
인권단체 "'인종청소' 한창때 지원…日정부, 조사 나서야"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일본의 대표적인 양조기업 가운데 하나인 기린 맥주가 로힝야족 집단학살 및 인종청소 논란을 일으킨 미얀마군을 지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는 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 맥주회사 기린이 지난해 로힝야족 유혈사태가 한창일 당시 '인종청소'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얀마군에 기부금을 냈다고 폭로하고 일본 정부에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린 홀딩스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미얀마 내 자회사인 미얀마 양조(Myanmar Brewery)를 통해 3차례에 걸쳐 총 3만 달러(약 3천260만 원)를 지원했다.
첫 기부금은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에게 직접 전달됐으며, 기부금 전달식 장면은 현지 TV에 방영됐다.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로힝야족 사태가 '벵갈리'(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이민자라는 의미로 낮춰 부르는 명칭) 극단주의자들이 근거지를 구축하기 위해 꾸민 일이라며 미얀마군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정당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기린 측은 당시 전달된 6천 달러가 폭력사태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기부금 중 일부가 라카인주에서 작전 중인 보안요원과 주 정부 공무원들에게 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라카인주는 미얀마군에 의한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가 벌어진 곳이다.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 반군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오랫동안 핍박받아온 동족을 위해 싸우겠다면서 대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지난해 8월 25일 미얀마 경찰 초소와 군 기지 등을 급습했다.
미얀마 정부와 군은 ARSA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병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죽고 7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전쟁의 화마를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대피했다. 21세기 아시아 최대 규모의 난민 사태였다.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양민을 학살하고 성폭행, 방화, 고문을 일삼으며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고 주장했고,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청소'로 규정해 제재와 국제재판소 기소 등을 추진했다.
이런 미얀마군을 지원한 기린 맥주의 행태에 대해 AI의 사업·인권 분야 책임자인 시마 조시는 "미얀마군이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와중에 어떻게 국제적인 기업이 미얀마군에 기부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기부금이 반인도적 범죄에 연루된 미얀마군 지원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론 (인종청소의 책임이 있는 ) 미얀마군 최고 사령관에게 드러내놓고 기부금을 전달한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꼬집고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이 인권 탄압에 기여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번에 드러난 논란의 선물에 대해 시급히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린 맥주 측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목적으로 기부금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인종청소 지원 의혹을 부인했다.
호리 노부히코 기린 맥주 대변인은 AFP통신에 "기부금은 인도주의적 지원에 쓰인다는 조건으로 전달됐다. 다만, 우리는 그 돈의 행방을 충분히 추적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지난 5월 미얀마 양조에 대해 인권 분야 영향 평가를 했고 (기부행위가) 국제앰네스티의 의혹 제기와 무관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해명했다.
기린 맥주는 2015년 미얀마 군부 측 기업인 UMEHL에게서 현지 최대 맥주 회사인 '미얀마 양조'의 지분 55%를 5억6천만 달러에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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