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김정은, '북미수교시 미군철수 요구안해' 전했을 것"

입력 2018-06-16 03:42  

정세현 "김정은, '북미수교시 미군철수 요구안해' 전했을 것"
'베를린 구상' 1주년 행사 기조연설…"판문점 선언으로 승화"
"北, 경제적 수준 올라가면 인권 개선될 것"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수교가 가능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게 선대의 유훈'이라는 뜻을 전달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에 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주독 한국대사관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발표 1주년을 맞아 공동개최한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3월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에게 이런 언급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이 때문에 짐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한미군 철수는 의제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2000년 6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이 냉전 체제 이후 동북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김 전 대통령은 이에 북미대화를 주선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에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당시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라며 "이 내용은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나온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목표로 하는 문 대통령의 통일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판문점 선언'으로 승화됐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관련해 "이런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이 묵묵히 '베를린 구상'을 하나씩 추진해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우리로선 참 고마운 분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봤는데 괜찮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을 전제로 "변화된 동북아 국제질서에 맞도록 한미동맹의 위상과 역할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 '조정'이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 간 군비통제와 군비감축 협상도 하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북한과 극단적으로 대립해온 미국이 협상으로 전환한 원인과 관련해선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방심해온 미국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선 "북한이 개방하고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 인권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 통일비용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고, 잘못된 전제하에 부풀려 계산된 통일비용은 통일에 대한 기대보다는 공포를 키울 수 있다"라며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을 뺀 '순 통일비용'과 통일이 가져올 편익까지 합산하면 통일은 가성비가 높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토론에 참여한 박명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북한과 미국이 각각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 차원의 상호검증과 지원을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추상적 합의 수준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는 낙관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에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집착은 북한을 철저히 항복시키기 위한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음모로, 주권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욕적일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의 변화는 핵을 가진 자신감과 함께 미국의 폭격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베를린 구상'의 주요 내용이 모두 현실이 돼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해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한독의원친선협회 부회장인 하이케 배렌스 사회민주당 의원과 독일 외무부의 헤닝 지몬 한국과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고,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로 초청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토론을 지켜봤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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