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권당 내홍·회원국 간 갈등…"당사국 특별회의 추진"
각국 反난민 극우 득세 속 지중해에 보트피플 아직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수년 전 난민사태를 겪은 유럽이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새로운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난민수용 문제를 두고 독일에서는 집권당 내홍이 불거졌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삿대질하며 싸웠다.
유럽 곳곳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던 극우성향의 정파들이 속속 권력핵심에 접근해가는 사이 지중해에서는 계속 난민, 이주민이 몰려들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안의 시급성을 반영하듯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의 특별회의를 타진하는 것으로 17일(현지시간) 알려졌다.
독일 일간 빌트는 메르켈 총리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 이주민들로 인해 악영향을 받은 국가들과 함께 EU 차원의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난민포용 두고 자매당 대립격화…독일 대연정 깨질라
2015년 전후로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포용한 독일은 집권당 내에서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기사당)이 난민 친화적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기사당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EU 내 다른 국가에 미리 망명신청을 했거나 신분증이 없는 난민의 입국을 거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호퍼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해당 정책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메르켈 총리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사당은 다시 이에 반발, 이튿날 의원총회를 열어 제호퍼 장관의 난민정책에 만장일치로 지지를 보냈다.
난민포용을 주도한 기민당, 사회민주당을 상대로 기사당이 강경책에 집착하면서 갈등이 악화하면 대연정이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독일은 설상가상으로 난민·망명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뇌물수수 스캔들까지 터진 상황이다.
공무원들이 금품을 받고 망명을 승인해줬으며 그렇게 입국한 이주민 가운데 테러 우려를 사는 극단주의자들도 포함됐다는 게 스캔들 골자다.
결국, 2013년부터 난민정책의 실무를 총괄해온 유타 코르트 연방이민난민청 청장은 지난 16일 경질됐다.
◇치고받던 프랑스-이탈리아 "이민통제 강화하자" 봉합
독일과 함께 EU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꼽히는 프랑스와 최근 포퓰리스트 연립정권이 수립된 이탈리아는 난민을 두고 깊은 갈등을 노출했다.
이탈리아가 629명을 태운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의 자국 입항을 지난 10일 거부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비난한 게 계기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무책임하고 냉소적"이라고 했으나, 이탈리아는 "용인할 수 없다"며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불러 사과를 요구했다.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오는 이주민들이 목적지가 되고 있다.
최초를 발을 디딘 국가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 때문에 이탈리아는 지중해 관문이라는 이유로 더 큰 부담을 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위기, 난민사태에 대한 EU의 방관적 태도에 분노한 대중을 등에 업고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로 올해 3월 총선에서 승리해 이달 연립정권을 수립한 오성운동과 극우성향 동맹당은 난민정책을 강경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쿠아리우스에 탑승한 난민과 이주자들은 결국 스페인의 허가를 받아 발렌시아로 향했다. 프랑스는 자국 행을 원하는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난민과 불법이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조율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5일 정상회담에서 난민 신청자들이 지중해를 넘어오기 전 심사를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유럽 곳곳에서 난민반감 등에 업은 극우정파 득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갈등은 억지로 봉합됐으나 난민사태와 관련해 EU 회원국 곳곳에는 아직도 갈등 소지가 가득하다.
대규모 난민유입으로 인한 불완전한 사회통합, 대중의 불안 때문에 反난민을 기치로 내건 정파들이 속속 통치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이달 초 총선에서 난민유입에 반대하는 우파 슬로베니아 민주당(SDS)이 1당으로 도약, 이민자에 적대적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작년에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반난민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극우 자유당은 중도우파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해 주류 정치권에 편입했다.
헝가리에서는 EU의 난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올해 4월 3연임에 성공했다.
유럽 집권자 가운데 난민포용을 반대하는 주동자 격인 오르반 총리는 '유럽 정체성'의 위기를 거론하며 각국에 국수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폴란드는 2016년 민족주의성향의 '법과정의당'이 권력을 잡고 난민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또 스웨덴에서는 극우성향의 스웨덴 민주당이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선전하면서 역대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우파 덴마크민족당의 영향력이 반영돼 이미 유럽 내에서 가장 강력한 이민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경찰이 체류비용을 이유로 망명 신청자들의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도록 법령을 최근 개정했다.
이밖에 독일의 대안당(AfD), 프랑스의 국민연합(옛 국민전선), 네덜란드의 자유당 등 극우성향의 정파들도 과거와 다른 세력을 자랑하며 통치에 가담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지중해에는 여전히 유럽행 보트피플 쇄도
유럽의 정정이 이주민들로 인해 대단히 불안정해지고 있음에도 지중해를 통한 이주민 유입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 해안경비대는 15∼16일 지브롤터해협에서 고무보트 등에 타고 있던 난민 933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들이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난과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 대륙으로 오던 난민들로 보고 있다.
이주민을 지원하는 정부간 기구인 국제이주기구(IOM)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바다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 이민자는 3만5천504명이다.
이 같은 수치는 작년 같은 기간 7만3천748명보다 적지만 목숨을 건 여행이나 도착지에 초래할 혼란 탓에 큰 우려로 지목되고 있다.
올해 유입자들을 보면 이탈리아가 1만4천330명(지중해 중부 뱃길)으로 가장 많았고 그리스가 1만1천812명(동부 뱃길), 스페인이 9천315명(서부 뱃길)으로 뒤를 이었다. 여행 도중에 숨진 이들은 이탈리아 503명, 그리스 45명, 스페인 244명으로 총 792명으로 집계됐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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