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민심 눈높이 안 맞는 한국당 혁신안

입력 2018-06-18 18:17  

[연합시론] 민심 눈높이 안 맞는 한국당 혁신안

(서울=연합뉴스) 지방선거에서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은 자유한국당이 '보수 궤멸' 위기를 수습하겠다며 제시하는 진단과 처방이 또다시 민심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는 흐름이어서 우려스럽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혁신안으로 발표한 내용의 골자는 ▲ 중앙당 해체 ▲ 당명 개정 ▲ 원내중심 정당 구축 ▲ 구태청산 태스크포스(TF) 가동 ▲ 외부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이다. 과연 희생하고 헌신하고,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제대로 읽고, 인적 쇄신과 세대교체로 "당을 확 바꾸라"는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처방인지 의심스럽다.

아래로부터의 당내 혁신 움직임도 감동과 반향이 없다. 선거 참패 후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는 반성문을 쓰고 무릎까지 꿇으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후속 쇄신 논의는 활력이 없어 보인다. 당이 이 지경이 되도록 책임을 방기한 중진들은 숨죽이고 있고, 쇄신의 깃발을 치켜들어야 할 초·재선들은 삼삼오오 모이곤 있지만 공허하고 추상적 주장만 나열하고 있다.

김 대표 대행이 내건 중앙당 해체는 당 사무처 조직을 슬림화하고 원내중심 정당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진보 정당을 막론하고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면 으레 단골 메뉴로 제기되는 게 경비 절감을 위한 중앙당 사무처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지방선거 참패 후 한국당이 처음 내놓은 쇄신안으로는 생뚱맞다. 당 해산 요구까지 제기되는 마당에 한국당의 첫 답변이 사무처 당직자들을 줄이는 중앙당 슬림화라는 것은 핵심을 비켜가도 한참 비켜간 것이다.

한국당 참패의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당내 국회의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태도, 대선 패배 후에도 반복된 당내 계파 싸움, 과거 반공 패러다임에 안주한 냉전·수구적 자세 등이라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 아니던가. 정당을 해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점에서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재정립해보라는 게 보수 유권자의 쓴소리 아니던가.

비대위원장의 당내 인사 추대냐, 외부인사 영입이냐를 놓고도 당내 이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대표 대행이 입장을 불쑥 밝힌 것도 당내 분란을 추가하는 요인이다. 당 대표가 물러난 상황에서 원내대표가 대표 대행으로 당을 이끄는 것은 당헌에 따른 권한이지만,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당에 당 혁신 로드맵을 짜는데 있어서는 의원총회 등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당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논의와 행동이 선행되지 않은 채 틀에 박힌 당명 개정부터 먼저 끄집어내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 혁신을 위해 낡은 보수를 버리고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개혁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재정립하고, 그 깃발을 움켜쥘 새 인물의 수혈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선 투쟁은 불가피할 것이고, 인적 청산도 수반될 것이다. 새로운 보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고통스럽지만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다. 당내 고질병인 계파 싸움이 또다시 도지면 회생의 길은 멀어진다. 이 와중에도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이해타산이 움직이고 살생부 논란까지 부상해 차기 총선 공천싸움이 개시됐다는 기가 막히는 얘기도 나온다.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된다 한들, 선장의 운명은 배와 같이 침몰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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