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루카쿠의 시원한 복수…"날 키운 건 분노"

입력 2018-06-19 08:36  

[월드컵] 루카쿠의 시원한 복수…"날 키운 건 분노"
"어린 시절 '어디서 왔니'라고 묻던 사람들…내 실패를 바라는 사람들 많죠"
"어머니를 걱정하던 외할아버지와 단 한 번만 통화할 수 있다면"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로멜로 루카쿠(25·벨기에·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키운 건 '분노'였다.
월드컵 축구대회 본선 무대에서 2골을 몰아넣어 맨 오브 더 매치(MOM)로 선정된 후에도 그는 "벨기에에는 내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참 많다.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줬다"고 가시 돋친 소감을 밝혔다.
루카쿠는 19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G조 1차전에서 2골을 넣었다. 내심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벨기에는 루카쿠 덕에 파나마를 3-0으로 제압하고 상쾌하게 출발했다.
루카쿠의 승리 소감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내가 첼시에서 경기 출장 시간을 보장받지 못할 때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웨스트브롬으로 이적한 뒤에도 나를 비웃는 사람들의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며 "그러나 괜찮다. 어차피 내가 힘들 때 내 옆에 있지 않았던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라고 말했다.
루카쿠는 꽤 자주 가시 돋친 인터뷰를 했다. 월드컵을 앞두고는 "벨기에 언론은 내가 좋은 경기를 하면 '벨기에의 공격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진한 날 벨기에 언론에 나는 '콩고의 피가 흐르는 선수'로 바뀌어 있다"고 자국 언론을 향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부드럽게 말해달라"는 부탁이 오면 루카쿠는 "나를 키운 건, 분노"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루카쿠는 가슴에 불을 품고 자랐다. 자신을 멸시하던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성장 동력으로 바꿨고, 세계 최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올라섰다.
그가 18일 스포츠선수 기고전문매체인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올린 글을 보면 '분노의 이유'는 더 명확해진다.
루카쿠는 "6살 때, 우리 가족이 파산한 걸 알았다. 어머니가 내 우유에 물을 탔다. 우리는 식비를 감당할 돈도 없었다"고 떠올렸다. 루카쿠의 아버지는 콩고 국가대표였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자리 잡지 못했고, 선수 시절 막바지에는 금전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루카쿠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 물을 끓여 샤워한 날도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와 약속했다. 어머니가 더는 어렵게 살게 하지 않게 하겠다고. 당시 나는 6살이었지만, 어머니께도 '꼭 안더레흐트에서 축구를 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내 삶의 첫 번째 목표였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루카쿠는 더 전투적으로 축구를 했다. 그는 "유치원 쉬는 시간에 했던 축구도 내게는 결승전이었다. 내게 축구는 놀이가 아니었다. '상대를 잡아먹겠다'는 마음으로 공을 찼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유소년 축구를 시작한 뒤, 루카쿠의 분노는 더 커졌다. 또래보다 키가 크고, 실력도 뛰어난 그를 향해 다른 학부모들이 "너는 몇 살이니"라고 묻기 시작했다. 루카쿠의 나이를 의심한 것이다.
11살 때의 기억은 더 강렬하게 남았다. 루카쿠는 "한 부모가 나를 붙잡더니 '얘 신분증 어딨나요. 대체 어디 출신이죠'라고 소리쳤다. 나는 앤트워프에서 태어나고 자란 벨기에 사람인데도 말이다"라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꺼냈다.
루카쿠는 "나는 가슴에 커다란 분노를 품고 뛰었다. 우리 집에는 쥐가 돌아다녔고, 다른 아이들처럼 TV로 챔피언스리그도 볼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나를 뜨겁게 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루카쿠의 마음에 분노만 가득했던 건 아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또 다른 동력이 됐다.
루카쿠는 "12살 때였다.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로 34경기에서 76골을 넣은 걸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 외할아버지가 '내 딸을 잘 보살펴줄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셨다"며 "그때 나는 '약속하겠다'고 답했다. 외할아버지는 그 통화 후 5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루카쿠는 16살 때부터 프로에서 뛰었다. 어머니와 처음 약속했던 '안더레흐트 1군 입성'에 성공했다.
세계 최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그는 여전히 외할아버지와의 통화를 떠올린다.
그는 기고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외할아버지와 한 번 만 더 통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딸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 집에 쥐도 없고, 바닥에서 주무시지도 않아요. 이제 더는 사람들이 내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들은 내가 누군지 잘 알거든요'라고 말이다."
jiks7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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