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불보(佛寶) 사찰
(양산=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경남 양산의 통도사로 향하는 길. 절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 나들목(IC)을 빠져나가면서부터 통도사의 규모와 사세(寺勢)가 짐작이 간다. 불가의 세 가지 보물 중 으뜸이라는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에, 수행과 교육 기관을 모두 갖춘 총림이니 능히 그럴 만하다고 수긍이 간다.
일주문 기둥 좌우의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란 글귀에서 다시 한 번 그 위세를 확인한다.
◇ 독을 품은 용 쫓아내고 세운 금강계단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佛寶) 사찰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法寶) 사찰 해인사, 보조국사 이래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 사찰 송광사와 함께 한국의 삼보사찰(三寶寺刹)로 꼽힌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자장율사가 석가모니가 입었던 가사와 진신사리를 가지고 돌아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통도사 터는 아홉 마리의 독을 품은 용이 사는 큰 연못이었는데 자장이 법력으로 이 용들과 싸워 여덟 마리를 떠나보내고 터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한 마리를 위해 메우지 않고 남겨 놓은 곳이 현재의 구룡지라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네댓 평의 작은 연못이지만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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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가람배치의 중심은 단연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이다. 대웅전과 함께 국보 제290호로 지정돼 있다. 계단은 본래 승려가 계를 받는 곳으로, 금강계단 가운데 종 모양의 부도(사리탑)를 세우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부처의 사리가 있기에 바로 붙은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웅전 안에서는 금강계단을 향해 뚫린 창으로 참배한다. 대웅전 사면에는 각각 '대웅전'(大雄殿), '대방광전'(大方廣殿), '금강계단'(金剛戒壇), '적멸보궁'(寂滅寶宮) 편액이 걸려있다. '적멸'은 수행자의 궁극의 목표를 이르는 열반(涅槃)을 뜻하는 말로,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금강계단은 이 사찰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야외임에도 신발을 벗고 참배해야 한다. 경주 지진 이후에는 사리탑 보존을 위해 참배를 규제하고 있다. 음력 초하루∼초삼일, 음력 보름, 음력 18일(지장재일), 음력 24일(관음재일) 등 한 달에 엿새만 개방한다. 개방 시간도 오전 11시∼오후 2시로 길지 않으니 참배하려면 여행 계획을 잘 짜야 한다.
신라 시대 경주의 황룡사가 왕실귀족불교의 중심이었다면, 산중에 자리 잡은 통도사는 수행 불교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국내 8대 총림(叢林) 중 한 곳이다. 총림은 승려와 속인들이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말인데, 현재는 승려가 참선과 수행을 하는 선원(禪院),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 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갖춘 종합수행도량을 말한다. 통도사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올해 하안거에 300여 명의 승려가 참여하고 있다.
◇ 마음의 소리 듣는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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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폭염이 찾아온 6월의 어느 날, 경남 지역의 원어민 교사 30명이 통도사를 찾았다. 단출한 개량한복으로 제공된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땡볕을 가려 줄 밀짚모자를 쓰고 사찰을 둘러봤다. 학인(학생) 스님의 영어 안내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암자들이 있는 산 중턱을 향했다.
잘 닦인 포장길을 따라올라 막 공사를 끝낸 국제템플스테이관에 도착했다. 2층 체험관에서는 탁 트인 전망이 내려다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씻었다. 왼쪽으로는 초록빛이 짙어진 차밭이 보인다.
이곳에서 원어민 교사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다도(茶道)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불가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을 수행의 하나로 본다. 차와 선이 한 맛이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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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교사들이 자리 잡고 앉자 통도사의 다례교육기관인 선다회의 다인(茶人)들이 이들 앞에 노란 연둣빛의 차와 떡이 곱게 담긴 작은 쟁반을 놓았다. 일부는 다인의 시범이 시작되기도 전에 냉큼 잔을 비우고 떡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차를 다려 내는 팽주와 팽주를 도와 손님에게 차를 내는 시자의 다례 시범을 조용히 지켜봤다. 이후에는 배운 대로 왼손으로 잔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잔을 감싸 들어 올리고 색과 향을 먼저 음미한 뒤 세 번에 나누어 마셨다.
바닥에 앉아 저린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인내했던 시간이 지나자 팽주의 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떠들썩한 시간도 잠시 허락됐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모여 앉은 이들은 탑돌이에 들고 갈 꽃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종이컵에 빨강, 노랑, 주황 연꽃잎을 붙인 뒤 초록색 잎으로 마무리했다.
학인 스님은 '사리탑이 아무리 영험하다 한들, 모든 기도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소원을 이루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노력이다'라는 진지한 이야기를 쉬운 영어로 재미있게 전했다. 외국인 청년들은 웃음으로 답했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산사에서 컵등을 들고 줄지어 이동한 곳은 가장 신성한 곳, 금강계단이다. 각자 만든 꽃등 안에는 진짜 촛불 대신 건전지가 들어간 작은 조명을 켰다. 국보인 이곳에서 진짜 초를 켰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신을 벗고 숨죽인 채 스님의 인도에 따라 사리탑을 돌았다.
한낮의 열기를 품은 따뜻한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각자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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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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