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넌 죽고 싶어? 빙충이 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라. 누구 좋으라고 죽니? 늙은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거짓부렁이 없다고 했다. 안 아프고 오래 살면 그만이지, 왜 죽는다니? 난 안 죽어. 삼천갑자 동방삭이처럼, 저승사자 피해감서 오래오래 살 거야. 그래서 총도 한번 쏴보고… 흐흐흐… 우스워?"
소설가 김인숙의 신작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문학동네)에 실린 단편 '델마와 루이스'에서 주인공 루이스가 하는 말이다. 80대 자매 '델마'와 '루이스'의 로드무비 같은 이 소설에서 루이스는 매력으로 빛나는 캐릭터다.
소설 초반을 보면 주인공이 델마인 듯 보인다. 델마는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며 온몸을 헌신해 생을 보낸 뒤 아들 집에 의탁해 살며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델마의 적요한 일상에 언니 루이스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족쇄에 갇혀있던 델마는 자유분방한 루이스에 의해 잠시나마 해방된다.
루이스의 삶은 델마와는 달랐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만 살기를 거부했고, 자신의 삶을 즐겼다. 아들을 따라간 미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옆집 할아버지와 연애를 하기도 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루이스는 한국에 있는 동생 델마를 찾아온다. 델마를 데리고 함께 집을 나선 루이스는 자신이 미국에서 본 영화라며 '델마와 루이스' 줄거리를 동생에게 들려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두 여성이 함께 길을 떠나 우발적으로 총을 쏘고 도주를 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영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늙은 두 여성이 삶에서 마지막일 일탈과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델마에게는 처음 만나는 자유이기도 하다. 평생 자기 자신을 잊고 살아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대면한다. 여기에 외로운 중년 여성과 그의 딸까지 합류하면서 여러 세대 여성의 유쾌한 연대가 이뤄진다. 이 여성들은 사회에서 크고 작은 악행을 저지르고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어머니만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시리다'는 남자들을 향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통쾌함과 뜻밖의 스릴러적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최근 김인숙 소설의 특별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 작품을 비롯해 표제작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빈집'과 '아홉번째 파도', '토기박물관' 등 8편이 담겼다. 올해 등단 35년을 맞은 작가의 원숙한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스릴러적 분위기가 깔린 '빈집'은 인간 존재와 삶의 다층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표제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은 30년 전 어느 하루의 일탈로 제자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한 노교수의 이야기로 인간사에 얼룩진 치욕의 감정을 정교하게 그린다.
작가는 책 말미 '작가의 말'로 "내게 이 소설들은 시간이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 거기, 멈춰 있는 것. 조용한 문장을 쓰고 싶었으나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혼자 쓰는 글보다 혼자 하는 말이 더 많아졌다. 질문들. 부당한 것에 대해. 여기, 나, 사람들"이라고 썼다.
284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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