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최근 들어 서울시향의 공연이 매우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지난주 음악회에서 러시아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와 함께 러시아 대평원을 떠올리게 하는 시원한 음색으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을 선보인 바로 그 서울시향이 마르쿠스 슈텐츠와 함께 한 이번 주 공연에선 폭발적인 사운드와 쾌속 질주하는 템포로 슈만의 교향곡 제4번을 새롭게 해석해내며 음악 애호가의 호응을 끌어냈다. 특히 22일 공연에선 명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와 함께 대단히 정교한 앙상블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해내 감탄을 자아냈다.
이번 공연 첫 곡으로 연주된 바그너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에선 핸드폰 벨소리 등으로 어수선한 객석 분위기 탓이었는지 오케스트라 연주가 다소 집중력이 떨어졌고 다듬어지지 않은 면도 있었다.
그러나 뫼르크와 함께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연주는 경이로웠다. 그것은 첼로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합주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연주로, 협주곡 연주의 이상적인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연주가 까다로운 데 비해 연주 효과가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맛이 부족하고 실내악적인 감각과 섬세한 표현이 요구되기에 초연 당시에도 이 작품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슈텐츠 지휘의 서울시향과 뫼르크가 이 협주곡을 초연했더라면 아마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기교나 표현, 앙상블, 그 모든 면에서 뫼르크와 서울시향의 엘가 첼로 협주곡 연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뫼르크의 첼로 연주는 기교에서나 음악적인 표현에서나 최고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는 신기에 가까운 활 테크닉을 구사하며 모든 음의 성격을 자유자재로 표현했고 손가락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인토네이션에 세심한 변화를 주기도 했다. 때때로 그는 음높이를 아주 약간 낮추어 미묘한 음영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음과 음 사이를 아주 약간 미끄러지듯 연주하며 애수 띤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개 빠른 템포로 음을 짧게 연주하곤 하는 2악장에서도 뫼르크는 모든 음을 부드럽고 충실히 표현함으로써 전혀 다른 뉘앙스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음표는 마치 우리에게 말을 건네듯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뫼르크의 세심한 연주는 서울시향 단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듯했다. 첼로 연주에 반응하는 오케스트라 여러 악기의 연주는 첼로 소리와 매우 잘 어우러졌으며, 때때로 뫼르크의 연주 템포가 갑자기 빠르거나 혹은 느리게 돌변하더라도 오케스트라 앙상블은 흔들림이 없었다. 무대에선 분명히 수십 명 연주자가 다 함께 연주했지만 마치 네다섯 명 뛰어난 실내악 연주자의 앙상블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음악회 후반부에 슈텐츠 지휘로 선보인 슈만 교향곡 제4번은 대단히 새로운 연주로, 음악애호가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릴만한 해석이었다. 1악장은 처음에 약박으로 시작하는 곡임에도 첫 음부터 끓어오르듯 폭발적인 팀파니의 강력한 소리가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윽고 템포가 빨라지고, 슈만의 부인 '클라라'의 모티브가 숨은 제1주제가 연주되자 슈텐츠의 지휘봉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클라라 모티브를 비롯한 이 곡의 모든 모티브는 매우 명확하게 표현되었다.
3악장과 4악장의 경우 연주 속도가 지나칠 정도로 빨라 다소 어수선한 느낌도 있었으나, 4악장 후반부에서 각 악기 군이 서로 모방하며 빠르게 질주하는 부분에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슈텐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가 아니었다면 슈만 교향곡 제4번이 이처럼 폭발적인 열정을 담은 곡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곡이든 참신하고 새롭게 재창조해내는 마르쿠스 슈텐츠의 지휘는 연주회 때마다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herena88@naver.com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