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급조치 활용해 항공·로봇 등 첨단 산업기술분야 中투자 제한할 듯
中, 은행 지준율 낮춰 시중에 120조원 공급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차대운 기자 = 미국이 첨단 산업기술 분야에 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무역전쟁의 2단계 조치를 예고하면서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한 데 이어 첨단 기술을 가진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기업의 인수나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주로 항공과 로봇, 인공지능, 의료장비, 철도를 포함한 미국 주요 기업과 스타트업들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로벌 G2'의 규모를 발판으로 미국을 바짝 추격하는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IT·우주·전기자동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굴기'(堀起)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투자제한'을 통해 중국에 대한 2차 공격에 나섬으로써 미중 무역전쟁에서 협상을 통한 타협의 여지가 줄고 양측의 분쟁이 더욱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재무부에 투자제한 방안을 마련, 금주 중 공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예고된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에 때맞춰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달 29일 관련 계획이 담긴 보고서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투자제한 조치의 범위와 관련, '중국제조 2025'에 속하는 10개 업종에 속하는 미국 기업들에 투자하거나 이들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2025년까지 이들 업종에서 세계적 선도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적 구상이다. 중국 정부가 이를 위해 외국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고 벌칙을 가하는 등 불공정 관행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불만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래의 신성장 산업을 성공적으로 장악하면 미국의 경제적 장래는 없고 국가안보는 심히 훼손되리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투자를 제한키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이 경제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폭넓은 권한을 취할 수 있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IEEPA는 1977년대에 도입된 법안으로, 북한과 이란 등을 제재하는 데 활용됐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 조직의 자산을 차단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이용됐다.
이 법을 바탕으로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면 중국 기업과 미국 첨단 기술 기업 간 거래를 차단하고 자산을 압류할 수도 있다.
행정부 내부에서는 그 집행기구로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모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CFIUS는 외국인 투자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심사해 찬반 의견을 건의하는 기구로, 재무부와 국토안보부, 국방부를 포함한 17개 정부 부처 대표들이 참여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CFIUS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결국 강경파들이 이겼고 백악관은 이미 관련 부처에 재무부의 작업을 도울 실무자를 정하도록 지시한 상태라고 소식통들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차이나 머니'를 겨냥한 대대적 규제조치가 현실화한다면 양국의 경제관계에는 장기적으로 관세 보복을 훨씬 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우선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컨설팅·리서치 업체 로디엄그룹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 중국의 인수·투자 규모는 작년 동기 대비 92%나 급감한 18억 달러였다.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2016년 사상 최고인 460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정치적 여건의 변화로 인해 290억 달러로 급격히 위축된 상태다.
IEEPA의 발동은 그동안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경제전쟁을 촉발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패턴에 부합한다.
국가 안보상의 위협을 이유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를 매긴 것이나 외산 자동차의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지를 조사토록 지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국무부 관료로 재직했고 현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연구소에 몸담은 피터 해럴은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적 도전을 모두 국가 안보상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중국 전문가 데렉 시저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첨단 기술 부문의 중국 투자를 겨냥한 것은 올바른 것이지만 의회의 CFIUS 강화 노력을 일방적으로 우회하거나 대체하려 한다면 반발을 맞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의 공세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이 은행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시중에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내달 5일부터 지급준비율을 인하해 시중에 7천억 위안(약 119조7천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24일 오후 발표했다.
이번 지준율 인하는 미국과 무역 갈등이 고조되면서 대미 수출 급감 등으로 중국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나온 것이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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