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무역전쟁' 부메랑…美할리데이비드슨 "공장 해외이전"(종합)

입력 2018-06-26 15:59  

트럼프발 '무역전쟁' 부메랑…美할리데이비드슨 "공장 해외이전"(종합)
EU 보복관세 피하려…"원해서 가는 것 아냐, 생존 위한 유일한 선택지"
'美제조업 기둥'마저 해외로…트럼프 관세폭탄·보복관세로 자국기업 '불똥'


(뉴욕·서울=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김연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이에 맞선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로 미 기업이 국내의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태로 불똥이 튀고 있다.
미국의 명품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드슨은 25일(현지시간) 공시자료를 통해 EU의 보복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이 전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생산시설 이전은 회사가 선호했던 일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EU 고객이 우리 제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유럽에서 사업을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라고 밝혔다.
생산시설 해외이전은 앞으로 최소 9개월에서 18개월에 걸쳐 이뤄진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EU의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EU는 22일부터 할리 데이비드슨을 비롯해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 위스키 생산업체 버번 등 28억 유로(약 3조6천억 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EU 보복관세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회사는 기존에 EU 수출 시 6%의 관세를 부담해왔지만, 이번 조치에 따라 관세가 31%로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지난해 유럽지역에 약 4만 대를 판매했으며 이는 전 세계 판매량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회사 입장에서 유럽은 미국 국내시장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관세 보복에 따라 할리 데이비드슨은 오토바이 한 대를 EU에 수출할 때마다 2천200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간 기준으로 올해는 남은 기간 3천만~4천500만 달러, 2019년에는 9천만~1억 달러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을 때, 할리 데이비드슨은 이로 인해 연 1천500만∼2천만 달러 상당의 원자재 가격이 인상됐다고 지난 4월 실적발표회에서 밝힌 바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에 오토바이를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자, 할리 데이비드슨은 태국에 공장을 짓는 등 '플랜 비'를 이행하기도 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다만 EU의 추가 관세로 늘어나는 비용을 당장 소비자에게 전가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1분기 할리 데이비드슨의 해외판매는 12% 증가한 반면, 미국 국내 판매는 0.2% 줄었다. 국내시장이 정체된 가운데 매슈 레바티치 최고경영자(CEO)는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해왔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대부분의 오토바이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현재 인도와 브라질, 호주 등에도 해외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국내 주요 시설은 '스윙 스테이트'(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아 표심이 고정되지 않은 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할리 데이비드슨의 노동자들이 그의 승리의 일등공신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위스콘신을 지역구로 둔 미 의회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할리 데이비드슨의 결정은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이 나쁜 생각이라는 증거"라며 회사의 공장 이전이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라이언 의장은 "미국의 노동자, 소비자, 제조업체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시장을 여는 것이지, 우리 시장에 대한 장벽을 높이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과거 이 회사를 '미국의 진정한 우상', '미국 제조업의 기둥'으로 치켜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은 "할리 데이비드슨이 가장 먼저 백기 투항했다는 데 놀랐다"며 회사 측을 비난했다.
그는 트위터에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고 그들은 결국 EU로 수출하는 데 관세를 물지 않게 될 것"이라며 "세금(관세)은 그저 할리의 변명일 뿐이다. 인내심을 가져라!"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할리 데이비드슨 임원진을 백악관에 초대하는 등 애정을 보여왔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편에 서서 EU를 정조준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EU는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무역 정책으로 미국 노동자들을 벌하려 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인 무역이 동참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를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공시 이후 주가는 6% 하락해 41.57달러를 기록했다.

WSJ은 할리 데이비드슨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계획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관련국의 대응이 해외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이 그동안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추상적 개념이었지만, 보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상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NYT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EU의 보복관세로 양쪽 기업들에 발생하는 금융비용의 초기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noma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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