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한 대서양관계 탓 미국 겨냥한 보복은 반드시 역풍
자동차 타격 땐 유럽통합 위험…FT "트럼프 설득이 최선"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 조치에 맞서 유럽연합(EU)이 보복관세를 단행하면서 촉발된 대서양 무역전쟁이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면서 EU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상징적 수출품에 대한 EU의 보복관세에 맞서 미국이 EU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을 겨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회원국 기업들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EU가 반격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EU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없애지 않는다면 EU산 자동차에 20%의 고율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말 수입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미 상무부는 외국산 자동차가 자국의 안보를 저해하는지 조사 중이다.
조사 대상은 580억 달러(약 64조7천억원)에 달하는 EU산 자동차와 차량 부품으로, 만약 관세가 부과된다면 적용 대상은 EU산 철강·알루미늄 수출품의 약 10배에 달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으로 EU 회원국들은 정치적으로 곤란한 선택이 불가피한 추가 보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벨기에 소재 싱크탱크 '브뤼겔'의 마리아 드머치스 부소장은 FT에 "EU는 의지와 무관하게, 그리고 중단할 능력이 없이 점점 미국과의 치킨 게임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다"며 "일단 이런 종류의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결국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확전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EU의 자동차와 차량 부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EU는 이번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미국 산업을 겨냥할 전망이다.
실제로 EU는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맞서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인 플로리다의 오렌지 주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의 지역구 켄터키의 대표상품인 버번위스키,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지역구 위스콘신에서 생산되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등을 보복관세 대상으로 지목했었다.
FT는 만약 EU가 미국의 수입 자동차 관세 조치에 맞서 보복에 나설 경우 최대 100억 유로(약 13조560억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EU와 미국의 밀접한 관계 탓에 EU가 미국의 어떤 산업을 표적으로 지목하든 EU 기업에 어느 정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EU가 미국 금융기관이나 보험사들에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지만 서비스업의 가치를 계량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불법적 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조치는 피해 규모에 상응해 이뤄져야 한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 내에서 EU가 미국의 서비스업계에 제재를 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의 대규모 무역전쟁에서 특히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경우 EU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통합을 유지하는 것도 EU가 직면하게 될 여러 도전 가운데 하나라고 FT는 설명했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중국과 미국에 대항해 세계 무역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EU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WTO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점도 EU의 선택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현재로서 EU에 최선의 방안은 미국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도록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FT는 진단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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